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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경제학과 심리학의 만남

행동경제학의 탄생


“이 세상에는 현실의 햄릿, 맥베스, 리어 왕, 오셀로가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것은 모두 냉철하고 합리적인 타입이지만 이 세상에는 더 다양한 타입의 사람이 있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경제학의 재생: 도덕철학으로의 회귀》

“뼈를 깎는 듯한 체험을 통해 우리들은 배웠습니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경제적 인간·신과 같은 인물

‘경제적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 homo economicus)’이라는 특별한 사람을 아는가? 경제적 인간이라는 말은, 극히 합리적으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이익을 위해서 자신을 적절히 조절하고, 단기적으로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자신에게 불이익이 될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에게 이익이 될 기회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따돌리고, 이익이 될 행동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서슴지 않고 해치워버린다.

금주, 금연, 다이어트 같은 결심도 작심삼일로 끝나고, 툭하면 전철 안에 우산을 두고 내리거나, 양다리를 걸쳐서 애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당첨은 꿈도 꾸지 않는 편이 나은 복권에 꽤 큰돈을 낭비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서 늘 보는 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인간은 우리가 늘 선망하는 대상이다.

마치 신(神)과 같은 이러한 인물이 주류 경제학에서 전제로 하는 경제인의 모습이다. 이처럼 특별한 인물이 과연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주류 경제학은 경제활동을 하는 우리 모두를 이와 같은 인물이라는 가정하에서 구축된 경제 이론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용어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비꼬아서 만든 조어다. 호모 사피엔스는 본래 라틴어로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현명함에도 정도가 있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다.

이왕 비꼴 작정이라면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가 만든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라든지, 아리스토텔레스의 ‘호모 파베르(homo faber, 만드는 인간)’ 쪽이 훨씬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경제적 인간이라는 아주 합리적인 인간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우선 다음 문제를 풀어보기 바란다. 정답은 제2장에서 살펴본다.

■ 문제 1 지금 여러분은 TV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가정한다. 몇 문제를 풀고 마지막으로 상금을 획득할 기회가 찾아왔다. 문이 3개 있고, 자기가 선택한 문을 열면 그 뒤에 있는 상품을 받을 수 있다. 오직 1개 문 뒤에만 자동차가 놓여 있고, 나머지 문 뒤에는 염소가 있다. 문 A, B, C 3개 중에서 추측으로 A문을 선택했다고 하자. 아직 문은 열리지 않은 상태다. 이때 자동차가 놓인 문을 알고 있는 사회자가 C문을 열었다. 물론 거기에는 염소가 있을 뿐이다. 바로 이 장면에서 사회자가 여러분에게 물었다.

“A문으로 결정하셨습니까? B문으로 바꿔도 괜찮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 선택대로 A문으로 할 것인지, 아직 열리지 않은 B문으로 바꿀 것인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확률에 관한 문제를 더 풀어보자.

■ 문제 2 어떤 치명적인 감염증에 걸릴 확률은 1만 분의 1이다. 과연 이 병에 걸렸는지 여부를 검사했더니 양성이었다. 이 검사의 신뢰성은 99%이다. 실제 이 감염증에 걸릴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다음은 논리에 관한 문제다.

■ 문제 3 다음과 같은 카드 4장이 있고 앞에는 알파벳이, 뒤에는 숫자가 적혀 있다. 현재 ‘모음이 적혀 있는 카드 뒤에는 짝수가 적혀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 성립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어느 카드의 반대쪽 면을 확인해야 할까?

E, K, 4, 7

다음 두 문제는 타인의 행동을 헤아리는 문제다.

■ 문제 4 이 문제는 100명에게 출제되었다고 가정한다. 1부터 100까지 각자 좋아하는 수를 하나씩 선택하게 하고, 선택된 수의 평균의 2/3배에 가장 가까운 수를 선택한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게임이다. 여러분은 승리하기 위해 어떤 숫자를 선택할 것인가?

■ 문제 5 여러분은 10,000원을 받고 다른 사람과 나눠 가지라는 지시를 받았다. 자신의 몫으로 전액을 다 가져도 좋고, 일부를 자신이 가지고 나머지를 상대방에게 줘도 된다. 단 상대방에게는 거부권이 있다. 또한 상대방이 그 금액을 수락하면 당신의 제안대로 분배되지만, 상대방이 당신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여러분이라면 상대방에게 얼마를 주겠다고 제안할 것인가?

합리적이며 이기적인 경제인

주류 경제학이 전제로 하는 인간상인 경제적 인간은 인지나 판단에 관해 완전히 합리적이며, 의지가 굳고, 오직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인지나 판단의 합리성이라는 개념과 물질적 이익 추구라는 개념을 합친 의미로 단순히 ‘합리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저술이나 연구자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양자에 대해 각각 개별적인 내용을 지닌 것으로 취급한다. 왜냐하면 사익 추구란 행동의 목적이며, 합리성은 그를 위한 수단·방법이므로 개념으로서는 각각 다른 것으로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합리적이며 사익 추구’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동시에 이타적’, ‘비합리적인 동시에 사익 추구’, ‘비합리적인 동시에 이타적’이라는 구조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이타적으로 행동하려는 사람이 비합리적이지만, 타인의 행동을 잘못 파악함으로써 그 반대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도 실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익 추구에 실패한 것일지도 모른다.

경제적 인간의 조건

경제적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합리적’이란 말부터 따져보자. 도대체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일상적인 또는 사전적인 사용법으로 합리적이란 말은 이성적, 논리적, 손익계산의 교묘함 등을 뜻하지만, 경제학에서는 합리성이라는 말에 상당히 한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우선 자신의 기호(취향)가 명확하며, 거기에는 모순이 없고 항상 불변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호를 토대로 자신의 효용(만족)이 가장 커질 수 있는 선택 대안(예를 들면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타당하고 납득이 가는 가정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은 상당히 엄격한 조건이다.

쇼핑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모든 상품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고, 진열된 상품이 어떻게 편성되어 있는지를 고려해야 하고, 그 상품을 소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용을 재빨리 계산하고, 효용을 최대화할 수 있는 상품 편성까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의사 결정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입수하는 일은 비용으로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모든 정보를 입수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분석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예를 들면 백화점에는 상품이 20만 점 정도 진열된다고 한다. 모든 상품의 리스트를 손에 넣는 일은 혹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상품 각각에 대해 소비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용을 계산하는 일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경제학자인 시오자와 요시노리(塩澤由典)가 조사한 바로는,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를 사용해도 가장 적합한 해답을 찾는 데 상품 수가 10가지일 때에는 0.001초로 끝나지만 30가지일 때에는 17.9분 걸린다고 한다. 상품 수가 40가지면 12.7일로 늘어나고, 50가지일 경우에는 놀랍게도 35.7년을 들이지 않으면 계산이 끝나지 않는다. 슈퍼컴퓨터로도 이 정도니 일반인들이 계산을 한다면 얼마나 걸릴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뿐인가. 경제적 인간은 언제라도 커피와 홍차 가운데 어느 쪽이 좋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고, 취향은 시간이나 상황에 따라 변해서도 안 된다. 커피와 홍차에 대한 취향이 아침과 밤에 다르다든지, 어제는 커피만 10잔 마셨으니 오늘은 홍차를 마시겠다는 식은 배제된다. 더욱이 의지가 강해서 금연이나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젊었을 때부터 담배는 피우지 않고, 다이어트를 하게 만드는 지방이나 당분 같은 것은 과잉 섭취를 하지 않는다. 경제적 인간은 애초부터 금연, 금주, 다이어트라는 단어와는 인연이 없다.

경제적 인간은 지각, 주의, 기억, 지론, 계산, 판단 등 뇌나 마음이 실행하는 인지 작업에 관해서는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일단 결심한 것을 반드시 실행하는 초월적 자제력을 갖춘 의지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슈퍼맨이지 않는가. 경제적 인간에 대해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쾌락과 고통의 번개 계산기’라고 말했다. 허버트 사이먼(Herbert Alexander Simon)은 ‘전지전능한 신과도 같은 존재’라고 정의하면서, “전지전능한 모델은 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모델이라면 모를까…… 인간의 마음을 나타내는 모델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탄식했다.

경제적 인간에게는 합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다른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첨가된다. 타인에 대해서는 일절 돌보지 않고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을 최대화하려는 이기적 인간이라는 점이다. 오로지 사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만일 이타적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 행동은 어떤 보답을 기대하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인간은 윤리나 도덕이라는 개념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 두 가지 특징만 보더라도 경제적 인간은 사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어떤 작은 기회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성격이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익을 얻을 기회가 있으면 범죄가 아닌 한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 인간이다. 경제적 인간은 법을 지키지만(물론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다) 법이란 틀을 벗어나는 윤리라는 개념이 있지 않다.

만일 여러분이 경제적 인간이라면 문제 1~5의 정답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정답을 얻는 과정은 설명할 수 없더라도, 직감으로라도 괜찮으니 정답을 찾기 위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답은 제2장에서 살펴본다.

경제적 인간 가설에 대한 옹호론

앞에서 살펴본 경제적 인간에 대한 전제는 일상 경험에서 또는 수많은 실증 연구에서 거의 모두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렇지만 주류 경제학에서는 합리성과 이기심의 가정(假定)을 기초로 유효한 이론을 구축할 수 있다는 옹호론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다음 4가지 옹호론을 살펴보자.

첫째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주장한 ‘마치 ~인 것처럼(as if) 행동한다’는 이론이다. 합리성 가정은 주체가 합리적일 필요는 없고 ‘마치 ~인 것처럼’ 합리적으로 계산하여 선택한 것처럼 간주하면 되므로 주체가 합리적이라는 가정 아래 이론 모델을 수립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는 주장이다. 이론 모델의 타당성 여부는 그 예측 가능성, 즉 그 이론 모델을 통해 경제나 경제활동에 관한 적절한 예측을 할 수 있으면 되기 때문에 전제 그 자체의 실현 타당성을 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고 있다. 즉 나뭇잎이 ‘마치 각각의 잎이 광합성을 위해 빛을 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는’ 것처럼 나뭇가지에 붙어 있고, 숙련된 당구 선수 자신이 ‘마치 공이 구르는 코스의 가장 적합한 방향을 결정하는 복잡한 수학적 공식을 알고 있으며, 공의 위치를 가리키는 각도 등을 눈으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고, 공식을 이용해서 재빠르게 계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식에 의한 방향으로 공을 굴러가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공을 친다는 것이다. 나뭇잎이 실제로 받아들이는 빛의 양을 최대화하는 계산법이 있을 리 없고, 아무리 숙련된 당구 선수라 하더라도 실제로 공이 구르는 상태에 관한 수학적 계산을 하지는 않는다. 이치로나 마쓰이 같은 야구 선수가 미적분을 풀어가면서 배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마치’ 그러한 최적의 계산을 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간주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당구공이 포켓에 들어간다는 예측, 이치로나 마쓰이가 공을 칠 것이라는 예측은 잘 맞기 때문에(7할은 빗나가지만) 합리성의 전제에 문제는 없다. 요컨대 예측 결과가 좋으면 가정의 현실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그러면 경제적 인간을 가정한 주류 경제학의 예측은 정확할까? 이것은 실증적 문제이지만 그 반대 사례는 간단하게 발견할 수 있다. 도시 근교에서는 야채나 과일을 무인 판매소에 진열해두고 판매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은 감시자가 없어도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을 것이라는 판매자의 예측이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에 의한 확증이 있기 때문이다. 제8장에서 자세히 검토하겠지만, 주류 경제학에서는 무료 봉사자나 헌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무인 야채 판매소 역시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즉 주류 경제학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측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의 ‘as if’ 이론은 현실에서는 실제로 적용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옹호론은 ‘시장에서의 도태론’이다.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는 시장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경제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뿐이며, 경제나 시장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합리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별문제가 없다는 것이 ‘시장에서의 도태론’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러셀(T. Russell)과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는 효용의 최대화에서는 벗어나지만 전혀 규칙적이지 않은 행동을 준합리적 행동이라 부르고, 합리적 주체와 준합리적 주체가 공존하는 경제에서는 모든 주체가 합리적일 때 존재하는 균형과는 다른 균형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러한 시장에서는 완전 합리적인 경우와 같은 균형이 성립하는 조건을 추구하고 있지만 매우 한정적으로만 나타난다. “개인의 비합리성은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라고 콜린 카머러(Colin F. Camerer)가 충실히 믿는 것은 경제학에서 구전되는 주요한 내용일 뿐이다.

그다음 이론은 경제적 인간에 대한 가정이 너무 심하지만 적당한 다른 이론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합리성 이론에 따라 경제적 인간 가설을 옹호한다는 잠정론이다. 이 주장은 옹호론 중에서 가장 일리가 있다. 초기의 행동경제학은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지만, 주류 경제학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현재의 행동경제학도 아직 주류 경제학 이론을 전면적으로 대체할 만큼 이론 체계를 잘 갖추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경제학자가 행동경제학의 연구에 충분한 자원을 투입한다면 표준적 경제 이론을 대체할 이론 체계가 성립될 것이며, 머지않아 그날이 올 것이라 예상된다.

넷째로는, 경제 이론은 규범(規範) 이론이지 기술(記述) 이론이 아니라는 옹호론이다. 즉 경제 이론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사람들의 실제 행동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나타내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이론을 규범 이론이라 한다. 이 이론의 핵심은, 사람이 경제적 인간일 경우 인지나 판단을 내릴 때 합리적이고 순수하게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행동해야 할 일’의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규범적 접근은 실패로 끝났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월성(두 가지 선택 대안이 있고 한 대안이 다른 대안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할 때 우월한 대안을 선택한다)이나 불변성에 반하는 것, 즉 규범적인 것과 동떨어진 선택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떠한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장하는 것은 유효한 이론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표준적 이론을 옹호하는 견해는 붕괴됐다고 말해도 좋다.

행동경제학이란?

행동경제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일치되는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 왜 그렇게 하는가, 행동의 결과로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가를 주제로 토론하는 경제학이라 말해도 좋다. 인간 행동의 실제, 원인, 경제사회에 미치는 영향, 사람들의 행동을 조절하기 위한 정책에 관해 체계적으로 규명할 것을 목표로 한 경제학이다. 새로운 대상이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연구, 즉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동경제학은 기존의 경제학과 같은 연구 영역을 취급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성격을 띠고 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 자제심, 이기심을 부정하지만 인간이 완전히 비합리적, 비자제적, 비이기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완전 합리적, 완전 자제적, 완전 이기적이라는 점만을 부정할 뿐이다. ‘인간의 합리성은 하나지만 비합리성은 무수히 많아 이론화할 수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비합리성’이란 개념은, 터무니없거나 또는 정형화되지 않은(random) 행동 경향이 아니라 합리성(경제적 인간)의 기준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사용될 뿐이다. 비합리적이기는 하나 일정한 경향을 띠고 있고 따라서 예측 가능한 행동이다.

그러한 행동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시상식에서 카너먼은 “우리들(카너먼과 트버스키)이 한 일을 인간의 비합리성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휴리스틱(heuristic)과 바이어스(bias, 편향)에 대한 연구는 합리성이라는 비현실적인 개념을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휴리스틱’은 합리적이지 못한 의사 결정을 내릴 때 근거로 삼는 간편한 수단이 되는 방법, ‘바이어스’는 그 결과로 발생하는 판단이나 결정의 편향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서는 제3장에서 자세히 검토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전혀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순수하게 이타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제8장에서 자세히 검토하겠지만, 오로지 사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인간과 종종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적 인간이 공존한다. 한 인간이 상황에 따라 이기적이 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관한 연구는 불충분하지만, 모든 사람이 물질적 사익 추구형 인간이라는 전제는 부정한다.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 참가자를 동원해 실험을 하기도 하고, 현장 답사(fieldwork)에서부터 컴퓨터 시뮬레이션, 뇌의 화상 분석에 이르기까지 종래 경제학에서는 별로 다루지 않았던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를 확실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진화론적 사고가 강력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인간도 동물인지라 진화 도태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그 결과 인간의 다양한 인지적·사회적 성질에 어떤 일정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경제·사회정책이나 기업 등의 조직에서는 이전까지는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로 다양한 정책을 수립하였으나, 인간이 제한적인 합리성을 띤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실증·이론·정책이라는, 경제학이 대상으로 삼는 모든 영역에 새로운 초점을 맞추는 것이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학문, 특히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진화심리학, 사회학, 윤리학, 철학에서부터 인류학, 진화생물학, 행동생태학은 물론, 생리학이나 뇌신경과학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한 학문에서 서로 영향과 시사점을 주고받는 전문가 협업 학문이다. 진화생물학이나 뇌신경과학의 영향에 대해서는 제9장에서 소개한다.

경제학과 심리학은 하나였다

행동경제학에 미친 심리학, 특히 인지심리학의 영향력은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 행동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경제적 인간만을 취급하는 주류 경제학은 심리학적 분석과는 인연이 멀다. 이런 경향은 주류 경제학이 확립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경제학은 원래 심리학과 연관성이 깊었다. 경제학이 확립된 18세기 무렵, 심리학은 아직 과학으로서 독립적인 입지를 마련하지 못해 당시의 경제학자는 심리학자를 겸업했다고 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국부론》(1776)에서 리스크나 불확실성이 인간의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누구나 이익을 얻을 기회는 약간이라도 과대평가하고, 사람들 대부분은 손실을 볼 기회는 조금이라도 과소평가한다”는 합리성에 반하는 심리적 요인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애덤 스미스의 최초 저작물은 《도덕감정론》(1759)이며, 이 책에서는 자제심이나 공감, 이타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렇지만 후세 사람들은 애덤 스미스가 ‘이기심’의 추구야말로 인간의 모습이며, 이기심의 추구가 실제로 희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서술한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우리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이나 술집, 빵집 주인들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고, 그들 자신의 이해(利害)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인류애가 아니라 이기심이며, 우리들이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필요가 아닌 그들의 이익에 대해서다.”

이는 분업과 시장의 활동에 대한 언급으로서, 이기심을 가져야 한다거나 이기심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요소보다 이기심이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이 물론 애덤 스미스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류 경제학이 수립되어온 역사 속에서 경제학과 심리학이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동기(動機)와 시장에 대한 스미스의 복잡한 견해가 잘못 해석되고, 감성과 행동에 관한 윤리적 분석이 간과된 것은 현대 경제학의 발전과 함께 발생한 윤리학과 경제학의 괴리라고 말할 수 있다”는 아마르티아 센의 견해는 ‘윤리학’을 ‘심리학’으로 바꿔놓아도 그대로 꼭 들어맞는다.

애덤 스미스 이후의 경제학자들 중에서도 인간 심리의 중요성에 대해 통찰한 경제학자는 적지 않다.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은 《경제학 원리》 첫머리에서 “경제학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개인적·사회적 행동에서 물질의 획득과 그 사용에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측면을 다루는 것”이라고 서술하였고, 경제학은 일종의 심리 과학이자 인간 과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학은 어떤 면에서는 부(富)에 관한 연구지만 다른 중요한 측면으로 보면 인간 연구의 일부다.

인간 심리를 경제학에 도입한 점에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는 걸출한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비합리성이 경제 행동이나 경제의 운용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1937)은 인간 행동에 관한 혜안으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면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일부 검토한 인지 바이어스, 답례성, 공정, 군중행동, 사회적 지위나 감정, 야심 같은 심리학적·사회학적 요소들의 역할이 반복하여 등장할 뿐만 아니라 강조되고 있다. 사이먼은 케인즈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기업가에게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 있다는 기술(記述)만큼은 매우 감탄했다고 한다.

또한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베블런, 어빙 피셔(Irving Fisher) 등과 같은 경제학자들의 저서에는 심리학에서 가져온 수많은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베블런은 제도파(制度派)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 제도란 ‘개인과 사회의 특정 관계나 특정 기능에 관한 지배적인 사고 습관’을 말한다. 하이에크의 저서 《감각 질서》(1951)는 거의 심리학 영역에 들어가도 좋을 만한 작품이다.

그 후 경제 심리학자라고 자칭한 사람이 바로 미국의 조지 카토너(George Katona)다. 그의 주요 저서는 《경제 행동의 심리학적 분석》(1951)인데, 이 책에서 그는 “우리들이 알고 싶은 것은 인간 행동-소비자나 경영자의 동기·태도·희망·걱정 등이 경기상승, 인플레이션, 경기후퇴 등의 출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다. 이런 상태에서 경제 불안을 완화하거나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며 경제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의 상호 관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카토너의 연구는 그다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사회학자 닐 스멜서(Neil Smelser)에게 “카토너는 전체적으로 소비 행동의 일반 이론에 대해 제대로 논하고 있지 못하다”는 혹평을 받기에 이르렀다.

재주꾼 허버트 사이먼

그 후 경제학에 심리학의 탁월한 견해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거의 끊어져버렸다. 이런 조류 속에서 유달리 빛을 발하는 사람이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이다. 현대 경제학자 중에서 경제적 인간 가설에 대해 가장 강한 이견을 주창했고, 대체 사고방식을 제창한 사람이 바로 사이먼이다. 사이먼은 다방면에 재주가 뛰어났다. 처음에는 정치학을 배워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나, 후에 경영학, 조직학, 컴퓨터 과학, 인공지능, 인지과학, 경제학 등을 연구하여 이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주류 경제학이 가정하고 있는 합리성에 대해 인간 인지능력의 한계라는 관점에서부터 체계적인 비판을 가한 최초의 경제학자다. 완전히 합리적일 수 없는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경제학은 제한된 합리성을 지닌 인간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실에서 인간의 선택은 최적화된 기준에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선택한다는 ‘만족화(satisficing)’ 원리를 비롯해 합리성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의 과정이나 방법에 대해 논해야 한다는 ‘절차적 합리성’이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조했다.

이처럼 사이먼은 의사 결정에 미친 진화의 영향을 중시했다는 점에서도 선구적이었고, 인간이 의사 결정을 고려할 때에 감정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한 점에 있어서도 획기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자는 인간의 합리성이나 의사 결정력 또는 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개인의 영향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사이먼은 사회과학자 중에서 최초로 감정의 중요성까지 주장한 인물이 된 것이 아닐까? 또한 사이먼은 이타성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혁신적이다.

유감스럽게도 당시 사이먼의 주장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이먼의 업적은 경제학과 심리학이 재결합하는 조짐이었지만 당시에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 즈음은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이 확립되어 힉스(J. R. Hicks), 새뮤얼슨(Paul Samuelson), 애로(K. J. Arrow)가 활약했으며, 물리학을 기본으로 하는 일반 균형이론 등 엄밀한 수학적 분석이 각각 각광받던 시대였다.

사이먼의 논점은 매우 설득력 있는 이론이었지만 극히 개념적·이념적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조작 가능한 모델화가 어려웠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자 사이에서는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수학적 이론을 선호하는 경제학자에게 ‘정리 없는 이론’(라인하르트 젤텐, 1990)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이먼이 주장한 이론의 정당성과 중요성은 인식되었지만 비합리성이나 비이기성에 대해 다룬 적합한 이론이나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학자들로서는 그의 이론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먼은 2001년에 사망했지만 그의 연구 성과는 행동경제학 이론 안에 폭넓게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이먼은 “마음의 성격을 이해하는 일은 사회제도와 사회 행동, 경제학이나 정치학에서 원활한 이론 구축을 이루기 위해서는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경제학은 인간의 이성에 대해 ‘선험적인’ 가정이란 기초 아래 2세기 동안이나 이 문제를 얼버무려왔다. 이런 가정은 이제는 알맹이가 없다. 이성에 대한 선험적인 가정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진실성이 있는 이론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현대 경제학자 중에서는 사이먼이나 조지 애컬로프(George Arthur Akerlof,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토머스 셸링(Thomas Crombie Schelling, 200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과 같은 일부 재주꾼을 제외하면 심리학에 특별한 관심을 배려한 경제학자는 출현하지 않았다.

인지심리학의 탄생

행동경제학은 심리학과 경제학이 재결합하면서 탄생한 연구 분야였기 때문에 심리학적 특징이 강한 경향이 있었다. 그 흐름의 중심에는 1950년께 창시된, 오늘날의 인지심리학이나 인지과학으로 불리는 연구 분야가 자리 잡고 있었다. 놀랍게도 인지심리학은 공식적인 탄생일이 있다고 한다. 1956년 9월 11일이 바로 인지심리학의 탄생일이다. 이날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개최된 심포지엄에서 오늘날 인지심리학의 문을 연 세 가지 중요한 논문이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세 가지 중요 논문 중에는 허버트 사이먼과 공동 연구자인 앨런 뉴웰(Allen Newell)이 발표한 ‘일반 문제 해결법(General Problem Solver)’이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대한 논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논문은 컴퓨터로 수학의 정리를 증명하는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인지심리학은 이날 극적으로 탄생했으며, ‘인지 혁명’(하워드 가드너, 1985)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때까지 인지심리학에 대한 사고의 주류는 ‘인간은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자극-반응계다’라는 견해였다. 하지만 이날을 계기로 그러한 견해가 완전히 변모해 ‘인간은 정보처리를 하는 부류’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그 후 인지심리학은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진화심리학을 파생시켰고, 뇌(腦) 과학과의 교류로 인지신경심리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들 분파도 행동경제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행동경제학의 성립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심리학의 일파로 간주되는 의사결정이론도 인지 혁명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것은 행동적 의사결정이론이라 불리는데, 원류는 1950년대 워드 에드워즈(Ward Edwards)에 이르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에 이르자 판단이나 의사 결정의 문제에 대한 인지심리학자들의 실험과 연구가 활발해졌다. 그 후 트버스키나 카너먼 외에도 폴 슬로빅(Paul Slovic), 바룩 피쇼프(Baruch Fischhoff) 등과 같은 인지심리학자들이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쳐 점차 경제학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행동경제학의 공식 탄생일이 인정되지는 않지만, 1979년을 ‘행동경제학 원년’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그해에 발행된, 이론계량 경제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잡지로 평가되는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에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기념비적인 논문 〈프로스펙트 이론: 리스크하에서의 결정〉이 게재됐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은 탄생 이래 현재까지 불과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젊은 학문이다.

이들의 뒤를 이어 인지심리학자들의 연구 흐름에 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가 가세해 경제학자와 심리학자가 협동으로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를 확립해가게 된다. 주도적 추진자로는 세일러 외에 경제학을 전공하고 행동경제학의 모든 영역에 걸쳐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매튜 라빈(Matthew Rabin), 심리학 전공자로 행동 게임론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콜린 카머러(Colin F. Camerer), 역시 심리학 전공자로 행동경제학 전반을 연구하는 카네기멜론 대학의 조지 로엔스틴(G. Loewenstein), 사회적 행동에 대한 독창적 실험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는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전)노동 경제학자 에른스트 페르(E. Fehr)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행동경제학 진영으로 저명한 산타페 연구소의 새뮤얼 볼스(Samuel Bowles)와 허버트 긴티스(Herbert Gintis)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주로 진화론적 관점을 중시하고, 사람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독창성을 연구하고 있다.

행동경제학이 인지심리학으로부터 받은 지대한 영향력에 대해 강조하자면 ‘행동경제학은 인지심리학의 일부인가, 단순한 응용에 불과한 것인가’라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결단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이론에 인지심리학의 성과를 도입하여 개량한 것이 행동경제학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주류 경제학을 전면적으로 포기하거나 해체하여 새로운 경제학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험경제학과의 차이

2002년 카너먼과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사람은 실험경제학자인 버넌 스미스(Vernon Lomax Smith)다. 실험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연구 대상이 아니라 연구 방법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지금까지의 경제학에서는 별로 익숙지 않았던 실험적 방법을 이용하여 경제 이론을 검증하는 것이 목적이다. 행동경제학도 실험적 방법을 다양하게 이용하지만, 그것은 단지 연구 방법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실험적 방법 없이는 행동경제학의 발전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실험경제학에 더 크게 의지하고 있지만, 행동경제학과 실험경제학을 별개의 것으로 이해해두는 게 좋다.

제2단계에 돌입한 행동경제학

매튜 라빈은, 행동경제학은 새로운 학문이지만 이미 ‘제2단계’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행동경제학은 이미 이륙을 위한 활주 기간을 마치고, 현재 창공을 향해 상승비행을 하고 있는 최고조 상태에 있다. 일반적으로 확립된 이론이나 패러다임에 반하는 사례를 ‘이상현상(anomaly)’이라고 한다. 행동경제학의 제1단계는 주류 경제학에 대한 이상현상에 착안해 사람이 경제적 인간과 어떻게 다른지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단계였다. 현재 이상현상은 실험적 방법이나 일상의 관찰을 통해 한우충동(汗牛充棟,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리고 집에 쌓으면 대들보까지 닿게 된다는 뜻으로 책이 많은 것을 비유한 말: 역주)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수많은 자료가 수집되고 쌓여왔다.

제2단계는 행동의 체계화·이론화를 도모하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정책 입안을 제언하는 단계다. 행동경제학 연구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상현상의 축적에 있다. 그것이 단순한 사실의 축적이라면,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상현상 자체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것이 새로운 이론 창출의 계기가 되어야만 한다. 사실의 축적으로부터 귀납적 이론이 발생한 것도 있고, 반대로 이론의 검증을 위해 사실이 이용된 것도 있지만, 양쪽 모두 “사람이 사실을 토대로 과학을 만드는 것은 마치 돌을 이용해 집을 짓는 과정과도 같다. 돌을 쌓아올렸다고 다 집인 것은 아니듯 사실을 모아놓았다고 과학인 것은 아니다”(푸앵카레, Jules-Henri Poincaré, 《과학과 가설》)는 경고문을 항상 마음에 담아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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