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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프로스펙트 이론(2) : 응용

‘소유하고 있는 물건’에 구속됨


“우리들 행동반경의 태반을 차지하는 것은 양심이나 이성이 아니라 세상의 눈이다. 세상이란 우리들 주변에서 우리들을 평가하는 자들을 말한다.”

해즐릿(Henry Hazlitt) 《잠언집》


준거점 의존성·손실 회피성과 무차별곡선

제4장에서는 장래의 이익이나 손실이 확률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리스크가 있을 경우의 선택을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리스크가 없는 상태(확률이 1인 상태)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의사 결정자가 받아들일 경우라고 하더라도 프로스펙트 이론의 가치 함수에 의한 사고방식은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 즉 리스크가 없는 확실한 경우에도 제4장에서 확인한 준거점 의존성이나 손실 회피성이 판단이나 선택에 두루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살펴보자.

표준 미시경제학의 분석 도구로서 무차별곡선이라는 것이 있다. 이 곡선은 소비자 이론이나 수요 이론 또는 시장 이론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림 5-1에서 나타나듯이 가로축에 상품 $x$, 세로축에 상품 $y$의 수량을 측정하고 무차별한, 즉 동일한 효용을 지닌 조합(예를 들면 A와 B)을 연결한 곡선이 무차별곡선이다. $x$와 $y$는 어떤 상품이어도 괜찮다. 예를 들어 $x$는 사과, $y$는 밀감이라고 해도 된다.

표준적인 무차별곡선은 상품 $x$, $y$의 조합에 의해 결정되며, 초깃값(준거점)의 위치는 관계가 없다. 그런데 프로스펙트 이론에서는 준거점의 도입과 손실 회피성에 따라 무차별곡선이 표준적 이론과 달리 그려지게 된다.

그림 5-1에서, 준거점 R에서 볼 때 A와 B는 무차별하다고 가정하자. 이때 무차별곡선은 $I_1$이 된다. 준거점 R에서 상품 $x$의 증감만을 보면 R에 비해 A에서는 $x$가 ‘$x_2 - x_1$’ 만큼 증가하고, B에서는 $x$의 증감이 제로다. 마찬가지로 준거점 S에서 상품 $x$의 증감만을 보면 S에 비해 A에서는 $x$의 증감이 제로지만, B에서는 ‘$x_2 - x_1$’ 만큼 감소했다. $y$값의 변화는 무시할 수 있다. R과 S의 $y$값이 같기 때문에 R과 A, B 그리고 S와 A, B를 비교한 값은 같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R에서 본 A의 가치보다 S에서 본 B의 가치가 작아진다.

여기서 S를 준거점으로 설정하면 A를 지나는 무차별곡선 $I_s$는 B 위쪽으로 지나가게 된다. 즉 R에서 보면 A는 B보다 $x$에 관해서 ‘$x_2 - x_1$’만큼 크고, S에서 보면 B는 A보다 $x$에 대해 ‘$x_2 - x_1$’ 만큼 작다. 손실 회피성에 의해 후자의 마이너스가 전자의 플러스보다 크기 때문에 S에서 보면 A와 B는 이미 무차별이 아니며, B보다 A를 선호하게 된다.

준거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A와 B의 무차별 관계가 변화한다. 결국 두 무차별곡선은 교차하게 되고, 주류 경제학이 이론적 기초를 두고 있는 무차별곡선은 의미를 잃게 된다.

보유 효과와 현상 유지 바이어스(Endowment Effect and Status Quo Bias)

제4장에서 확인한 손실 회피성이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일러가 명명한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이며, 다른 하나는 윌리엄 새뮤얼슨(William Samuelson)과 리처드 제크하우저(Richard Zeckhauser)가 규정한 ‘현상 유지 바이어스(status quo bias)’다.

우선 보유 효과부터 살펴보자. 보유 효과란 사람들이 어떤 물건이나 상태(재산뿐 아니라 지위, 권리, 의견 등도 포함된다)를 실제로 소유하고 있을 때는 그것을 지니고 있지 않을 때보다 그 자체를 높게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세일러는 보유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어떤 사람을 예로 들었다. 그는 1950년대에 1병에 5달러를 주고 산 와인이 현재는 그 가치가 100달러에 이르는데도 팔 생각이 없고, 또 똑같은 와인을 지금 다시 살 경우에는 35달러 이상은 주지 않으려 한다.

보유 효과는 두 가지 의미에서 손실 회피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첫째, 소유하고 있는 물건을 내놓는 것(매각)은 손실로, 그것을 손에 넣는 일(구입)은 이익으로 느끼는 것이다. 둘째,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지불하는 금액은 손실로, 그것을 팔아서 얻는 금액은 이익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손실 회피성에 따라 어느 쪽이라 해도 이익보다는 손실 쪽을 크게 평가하게 된다. 따라서 손실을 피하려고 가지고 있는 것을 팔려 하지 않고,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기회비용과 실제로 지불한 비용의 금액이 같을 때 후자를 더 소중하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현상은 여러 사례에서 확인되는데, 이 바이어스는 보유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지불한 비용은 손실이며, 기회비용은 얻을 수 있었지만 얻지 못한 이익으로서 반드시 손실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양쪽이 같은 크기였다 해도 손실 회피성에 따라 실제로 지불한 비용은 과대평가되고 기회비용은 경시된다.

보유 효과의 존재를 실험을 통해 최초로 확인한 사람은 크네시(J. L. Knetsch)와 신덴(J. A. Sinden)이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를 반으로 나눠 각각 추첨권과 현금 2달러씩을 주고, 서로 거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실제로 거래를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양쪽 모두 자신들이 소유한 물건이 상대방 물건보다 좋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와 같은 선호는 원래 추첨권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에게 우연히 추첨권을 주고, 추첨권보다 현금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에게 우연히 현금을 주었을 때 발생할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즉 보유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크네시가 실시한 또 다른 실험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실험 참가자를 3개 그룹으로 나누어 첫째 그룹에 머그 컵을 주면서 400g짜리 초콜릿 바와 교환해도 된다고 했다. 둘째 그룹은 첫째 그룹과 반대로 400g짜리 초콜릿 바를 주면서 머그 컵으로 교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교환에 필요한 시간이나 별도의 수고가 들지 않도록 고안된 실험이라 거래 비용은 거의 무시해도 된다. 또 셋째 그룹은 두 가지 물건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첫째 그룹의 89%는 머그 컵을 선호했다. 즉 초콜릿 바와 교환하지 않았다. 둘째 그룹에서는 90%가 초콜릿을 선택했다. 그들 역시 머그 컵과 교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 결과는 언뜻 보기에 머그 컵과 초콜릿에 대한 평가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머그 컵과 초콜릿 바 중에서 좋아하는 쪽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한 셋째 그룹에서 거의 반반 비율로 선택한 것을 보더라도 이 사실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 초콜릿보다 머그 컵을 선호하는 사람은 첫째 그룹에서 89%, 둘째 그룹에서 10%로 크게 차이가 났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보유 효과가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보유 효과는 시장의 압력이 있을 때나 학습에 의해 감소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카너먼, 크네시와 세일러는 참가자 700명으로 구성한 대규모 모의 시장 거래 실험을 수행하여 보유 효과는 범위가 넓고 강한 현상이며, 순수 시장에서도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수취와 지불의 차

보유 효과는 사람이 어떤 물건(권리나 자연환경, 경제 상태, 건강 상태 등을 포함한다)을 내놓고 그 대가로 희망하는 최솟값, 즉 수취 의사액(WTA, Willingness to Accept)과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지불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최댓값, 즉 지불 의사액(WTP, Willingness to Pay) 사이의 괴리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자신이 보유한 물건의 대가로 요구하는 액수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경우에 구입 비용으로 지불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액수보다 크다는 것이다. 이 현상 자체는 신고전파의 효용이론에 모순된 것이 아니라 보유 효과에 따라 WTA와 WTP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두 값은 일반적으로 차이가 매우 적다. 따라서 어떤 물건에 대한 평가로서는 어느 쪽 값을 사용해도 큰 차이는 없다고 되어 있으나, 실험 결과는 이와 같은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카너먼과 크네시는 다양한 대상을 상대로 WTA와 WTP의 괴리를 조사했다. 그들은 습지나 낚시터, 우편 서비스, 공원의 수목 등 시장에서는 거래되지 않지만, 그 소유권이나 사용권을 포기할 경우에 받고 싶은 금액(WTA)과 그와 같은 권리는 없지만 그것을 현재 상태로 보존하기 위하여 지불하고자 하는 금액(WTP)을 조사해봤다. 그 결과 WTA는 WTP보다 2~17배나 큰 값이 나왔다. 게다가 그것은 보유 효과의 존재나 전략적인 허위 답변의 원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WTA와 WTP의 괴리는 표준 경제 이론의 핵심부에 중대한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그것은 두 무차별곡선은 결코 교차하지 않는다는 성질 때문이었다. 이 성질은 무차별곡선이 ‘가역적(可逆的)’이라는 암묵적 전제 아래 성립된다.

즉 상품 $x$를 가지고 있을 때 상품 $x$를 $y$와 교환하는 것이 무차별하다면, 반대로 상품 $y$를 가지고 있을 때에는 상품 $y$를 $x$와 교환하는 것 역시 무차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보유 효과에 따라 WTA와 WTP의 값이 큰 차이를 보인다면, 그 가역성은 이미 성립되지 않는다. 즉 준거점으로부터 이동 방향이 다르면, 정상적인 무차별곡선과 다른 곡선이 그려질 뿐만 아니라 그 두 곡선들이 교차하게 된다(그림 5-1 참조).

크네시는 이와 같은 무차별곡선의 비가역성(非可逆性)에 대해 확인했다. 그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현재 소득이 700달러 감소하는 것과 1년간 입원해야 하는 사고를 당할 확률이 0.5% 증가하는 것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를 조사하였다.

첫째 그룹에게는 사고를 당할 확률이 0.5%에서 1%로 증가하고, 대신에 700달러가 지급된다고 하면, 그것을 받아들일지 아닐지를 질문했다. 그 결과 61%가 거부했다. 이 사실은 많은 사람에게 이 확률의 증가가 700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다른 그룹에게는 반대로 사고를 당할 확률이 1%에서 0.5%로 감소한다면 소득이 700달러 줄어도 좋은지 아닌지를 질문했다. 받아들인 사람은 27%뿐이었다. 즉 많은 사람에게 이 확률의 감소는 700달러 이하의 가치밖에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준거점으로부터의 이동 방향이 다르면 선호도 역시 달라진다. 첫 실험에서는 39%에 해당하는 사람들만이 확률의 변화보다 700달러를 선호하였고, 다른 그룹의 실험에서는 73%가 확률의 변화보다 700달러를 선호한 것이 된다.

또한 보유 효과에 의해 발생하는 WTA와 WTP의 괴리는 공공 정책의 이론적 기초인 비용편익분석(cost benefit analysis)에서도 중대한 의문을 던진다. 비용편익분석은 공공사업 같은 정책의 실행 여부를 결정하고자 할 때, 해당 사업이 실현될 경우에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가져다주는 비용과 편익을 계산함으로써 실행 여부를 판단하는 기법이다.

공원 조성 사업은 공원이 주는 편익을 산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공원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가 아니기 때문에 편익을 측정하기에 곤란한 점이 많다. 바로 이런 경우에 가상적인 시장을 설정해 실험적으로 편익을 측정하는 ‘상황적 가치 평가법(CVM, contingent valuation method)’이 자주 이용된다. CVM은 어떤 재화나 서비스의 편익 평가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공공재의 공급이나 공공사업, 환경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편익 평가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CVM의 요점은 사람들에게 WTA와 WTP에 대해 직접적인 답변을 받아 그 편익을 금액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WTA와 WTP에 괴리가 발생하면 적절한 평가 값으로서 어느 것을 사용해야 좋을까? 이에 대해서는 확정적인 결론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다음과 같은 세일러의 질문 역시 WTA와 WTP의 괴리가 발생하는 예다. 그는 실험 참가자인 학생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

하나는 “당신은 1주일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병원균에 감염될 위기에 놓였다. 감염될 확률은 0.001이다. 이 병의 치료를 위해 얼마까지 지불할 수 있는가?”다. 또 다른 질문은 “이 병의 연구를 위한 자원 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자원 봉사 업무는 감염될 확률이 0.001인 병원균에 노출되어 있다. 치료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얼마를 받아야 이 자원봉사에 응모할 것인가?”다. 전형적인 답변은 처음 질문에는 200달러, 둘째 질문에는 10,000달러였다.

WTA와 WTP의 괴리에 관한 이 조사는 실험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그 때문에 충분한 금전적 인센티브 없이 상품의 가치 평가라는 익숙지 않은 실험에 의해 도출된 결과에 불과하고, 현실적으로는 그 정도로 차이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호로비츠(J. K. Horowitz)와 매코넬(K. E. McConnell)이 지금까지 보고된 연구 45개를 종합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냈다. 첫째, WTA는 WTP의 약 7배다. 둘째, 시장에서 거래되는 통상적인 상품에서는 이 비율이 작고, 공공재나 환경 같은 비시장 재화에서는 크다. 셋째, 실험실의 학생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상품 평가를 실시해도 이 괴리는 감소하지 않았다. 또한 같은 평가를 반복하여 실험해도 이 차이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로써 실험실 학생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WTA와 WTP의 괴리가 크다는 비판은 맞지 않는다. 또한 WTA와 WTP의 괴리는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WTA와 WTP의 괴리를 이유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널드 코스(Ronald H. Coase)가 제기하고 주류 경제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코스의 정리(Coase’s Theorem)’는 이제 성립하지 않게 되었다.

‘코스의 정리’는 당사자 두 명 사이에서 이해가 대립함으로써 발생하는 거래 관계에 관한 정리(Theorem)다. 공장주 A와 강을 소유한 주민 B가 있다고 가정하자. A가 소유한 기업은 공해를 발생시키는 재화를 생산하고, 이로 인해 강 주인인 B에게 손해를 끼치게 됨으로써 A와 B의 이해(利害)가 대립하게 되었다. A는 공장주 입장에서 생산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강에 오염된 물을 방출할 권리를, B는 강 주인으로서 오염된 물이 강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을 권리를 지니고 있다. 결국 B는 A를 만나 협상을 할 것이고, 누가 자신의 권리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거래가 형성될 것이다. 예컨대 A는 돈을 주고 폐수 방출권을 살 수 있다.

이러한 예를 들어 코스는 단지 공해를 유발하는 쪽이 나쁘다는 일방적·단선적 사고의 틀을 극복하고 둘 다 가치 있는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양측의 권리가 시장 내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정부가 법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편익이 극대화된다는 정리를 만들었다.

코스의 정리는 당연히 WTA와 WTP가 일치한다는 암묵적인 전제를 바탕에 두고 있다. 그러나 현재 코스의 정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즉 기업 A가 공해를 발생시켰더라도 A에게 그 재산을 생산할 권리가 있는지, 또는 주민 B에게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그 출발점의 차이가 보유 효과에 따라 결정적으로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시장에서의 보유 효과

보유 효과는 시장이나 거래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보유 효과가 발생하면 거래에 따른 이익이 감소하게 된다. 원인은 상호 유리한 거래가 줄어들기 때문인데, 실제로 거래량은 표준 경제 이론의 예측보다도 더 줄어든다. 토지, 특히 농지 소유자가 토지에 애착이 깊다면 시장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도 땅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이는 보유 효과에 따른 거래 감소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런 사례를 보면, 보유 효과를 발생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 인간의 애착과 같은 감정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카너먼이나 크네시의 실험에서 참가자에게 나누어준 머그 컵이나 초콜릿 바는 우연히 입수한 물건이다. 이와 같이 재산에 대해서도 보유 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오랜 기간 소유했다는 애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노벰스키와 카너먼은 이를 ‘순간적 보유 효과’로 부른다). 이 점에 관한 심리 기제(mechanism)는 충분히 설명되어 있지 않다.

보유 효과는 기업 등의 조직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입장이나 지위를 지키려고 하거나, 자신이 속한 부서에 애착이 특별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행위는 조직의 인사 정책이나 인센티브 정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연히 또는 운 좋게 얻은 재산이나 기득권에 대해서도 작용하기 때문에 정부 인허가, 면허 등 다양한 법적 권리(소유권, 사용권) 등에 대해서도 보유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한편 노벰스키(N. Novemsky)와 카너먼은 재산을 이용하지 않고 재판매나 현금으로 교환할 목적인 경우에는 보유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들은 토큰(대체화폐)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사용가치가 없고, 곧바로 현금화할 수도 없는 토큰의 경우에는 보유 효과가 매우 작다는 것을 알아냈다.

존 리스트는 실제 스포츠 카드(스포츠 스타의 사진을 담은 카드로서 해외에서는 사고팖. : 역주)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를 관찰하고 이 사실을 확인했다. 거래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거래자에게는 보유 효과가 발생하지 않으며, 판매 목적으로 재산을 소유할 때 역시 보유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화폐는 일반적으로 재화와 교환(구입)할 목적으로 보유하기 때문에 화폐를 내놓는 일은 손실로 간주하지 않고, 보유 효과도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거래 당사자나 타인에 의해 보유 효과가 예측될 수 있는가 하는 명제에 대해 반 보벤(Van Boven)과 로엔스틴은 구매자는 물론 구매 대리인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밖에도 반 보벤과 로엔스틴은 보유 효과가 과거의 소유 이력(履歴)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상 유지 바이어스

손실 회피성에서 도출된 또 다른 성질이 현상 유지 바이어스다. 사람은 현재 상태(현상 유지)에서 변화하는 것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현재 상황이 특별히 나쁘지 않은 한 변화를 시도하면 좋아질 가능성과 나빠질 가능성 두 가지가 된다. 이때 손실 회피 작용이 발동하면 현상 유지에 대한 지향이 강해진다.

최근에 이 바이어스를 발견한 새뮤얼슨과 제크하우저는 현상 유지 바이어스와 관련된 가상 실험을 실시했다.

첫째 그룹에게는 다음과 같이 중립적인(기준이 되는)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신문의 경제면을 열심히 읽는 독자인데, 지금까지는 투자할 자금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뜻밖에도 작은할아버지에게서 아주 많은 현금을 증여받았다. 당신은 포트폴리오를 짜려 한다. 선택 대안으로는 다음 4가지가 있다. 별로 리스크가 크지 않은 회사의 주식, 리스크가 꽤 큰 회사의 주식, 재무성 채권 그리고 지방채다. 이 4가지 선택 대안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다른 그룹에 대한 질문 역시 내용이 비슷했다. 다만 첫째 그룹에 제시한 선택 대안 외에 ‘현상’을 더 추가하였다. “당신은 신문의 경제면을 열심히 읽는 독자인데, 지금까지는 투자할 자금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뜻밖에도 작은할아버지한테서 현금과 증권을 증여받았다. 증권 대부분은 별로 리스크가 크지 않은 회사에 투자되어 있다(현상)[이하 현금에 대한 질문은 첫째 그룹과 동일].”

셋째 그룹에게는 현상(초기 상태)과 관련된 선택 대안이 여러 가지 제시되었다. 그리고 현상 유지를 선택하는 정도와 현상 유지 이외의 경우를 선택하는 정도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모든 선택 대안에서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 쪽이 훨씬 더 많이 선택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선택 대안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현상 유지를 더 선호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이 실험 외에도 하트먼(R. S. Hartman)과 동료 연구자들은 현상 유지 바이어스에 관한 공공 정책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조사를 실시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 주의 전력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와 전기 요금의 선호에 대한 전력 소비자들의 실제 데이터를 기초 자료로 사용하였다.

우선 소비자 그룹을 둘로 나누어 실상을 파악했다. 1그룹은 서비스 신뢰도는 높지만(연간 3회 정전), 비싼 요금으로 계약한 소비자들이었다. 2그룹은 신뢰도는 낮지만(연간 15회 정전), 요금이 1그룹보다 30% 싸게 계약을 맺고 있었다. 이 두 그룹을 대상으로 하트먼 일행은 각각의 그룹별 현상과 신뢰도, 요금에 관한 6가지 조합을 제시하고, 무엇을 선택할지를 물었다.

결과는 역시 강력한 현상 유지 바이어스가 관찰되었다. 1그룹은 60%가 현상 유지를 가장 선호했고 요금이 30%나 저렴한 서비스로 바꾸겠다는 소비자는 불과 6% 정도였다. 또한 2그룹에서는 신뢰도가 낮음에도 58%가 현상 유지를 가장 선호하였으며, 신뢰도가 높은 서비스를 선택한 소비자는 6%에 지나지 않았다.

공공서비스 사업에 대한 신뢰도는 공공사업 간의 자원 배분, 사업 규모의 확대, 요금 결정 등에 큰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소비자의 설문 조사 등에서는 이런 종류의 현상 유지 바이어스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

현상 유지 바이어스는 현재 상태에서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관성’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관성은 물리적인 세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세계에서도 작용한다”(모신스키와 바빌레르).

새뮤얼슨과 제크하우저는 “현상 유지를 고집하는 기업의 관습에 따라 현직을 한 번 더 재임하려고 하고, 같은 브랜드 상품을 사고, 같은 직장에 머무는” 사람들의 성향은 이런 관성과 결부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런 특징을 고려할 때, 현상 유지 바이어스는 현재의 상태에 기준점을 내린 기준점 효과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다.

공정을 둘러싸고

사람들, 특히 소비자나 노동자는 상품의 가격·임금·이윤 등의 결정을 내리는 행동에서 무엇을 공정(公正)하다고 생각할까? ‘공정’에 대한 개념이나 사고방식은 상당히 다양하며, 결정적인 정의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카너먼, 크네시, 세일러는 공정성에 관한 사고방식을 제시하면서 공정이 손실 회피나 보유 효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어떤 행위나 상태의 변화가 공정한지 불공정한지는 종종 준거점과 거기서부터의 이동 방향을 기초로 해서 판단된다. 따라서 무엇보다 준거점이 어디에서 결정되는지가 중요하다.

카너먼과 크네시 일행은 밴쿠버와 토론토 시민 중에서 무작위로 선발한 사람을 대상으로 전화로 다음과 같은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답변은 ‘완벽하게 공정하다, 수용할 수 있다, 불공정하다, 매우 불공정하다’ 네 가지 중에서 선택하도록 하였다. 설문 조사 결과는 앞의 2가지를 ‘수용할 수 있다’로, 뒤의 2가지를 ‘불공정하다’로 분류해 집계하였다.

■ 질문 1 작은 커피숍에 종업원이 1명 있다. 그 가게에서 6개월간 시급 9달러를 받고 일하고 있다. 가게는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었는데 근처 공장의 폐쇄로 실업자가 증가했다. 이 때문에 다른 가게에서 커피숍 종업원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시급 7달러에 고용하기 시작했다. 가게 규모는 커피숍과 같았다. 그러자 커피숍 주인도 시급을 7달러로 내렸다.

  • [수용할 수 있다 17%, 불공정하다 83%]

■ 질문 1’ (마지막 부분 이외는 질문 1과 동일.) 커피숍 종업원이 그만뒀기 때문에 커피숍 주인은 시급 7달러로 신규 채용을 하기로 했다.

  • [수용할 수 있다 73%, 불공정하다 27%]

여기서는 종업원의 현재 임금이 준거점(참조 임금이라 한다)이 된다. 이를 기초로 커피숍 주인의 행동이 공정한지 아닌지가 판단되지만, 신규 채용자의 임금은 기준으로 적합하지 않다.

기업의 다양한 거래 상대방(소비자, 피고용자, 세입자 등)에게서는 시장 가격, 공표 가격, 과거의 거래 선례 등이 가격, 임금, 임대료 등에 관한 준거점이 된다.

그러한 준거점은 역사나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공정한 판단을 내릴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위의 사례에서, 제3자가 볼 때 시급 인하와 같은 근로조건 악화는 종업원의 손실로 간주되어 상대방에게 손실을 초래하므로 불공정하다고 판단된다. 즉 일종의 보유 효과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카너먼 일행은 이와 같은 거래에서 공정성의 원리는 ‘두 종류의 권리(dual entitlement)’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거래자는 준거점인 이전의 거래 상태를 지속할 권리를, 기업은 준거점인 이익을 유지할 권리를 각각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업이 거래 상대방의 준거점이 되는 가격이나 임대료, 임금 등에 대한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여 이익을 높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불공정하다고 판단한다. 단, 기업의 준거점인 이익이 위협받을 때에는 거래 상대방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기업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결코 불공정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처럼 공정성은, 거래 당사자가 소유하고 있다고 간주되는 권리에 대한 판단을 기초로 삼는다. 질문 1’의 답변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 들어온 종업원은 예전 종업원의 임금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따라서 커피숍 주인인 경영자의 행동을 불공정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다음 질문에서 나타나듯이 노동력에 대한 계약이 새로 체결되면 이전의 임금에 대한 권리는 소멸하게 된다.

■ 질문 2 페인트 가게에서는 조수 2명을 고용하고 있고, 그들에게 시급 9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페인트 가게를 폐업하고 원예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원예업의 현행 임금은 페인트 가게보다 임금이 적기 때문에 조수의 시급을 7달러로 내리기로 했다.

  • [수용할 수 있다 63%, 불공정하다 37%]

공정한 판단은 준거점으로부터 차이가 생기는 방향, 즉 어디서부터 (거래 상대방에 대한) 이익인지 또는 손실인지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보유 효과에서 발생하는 기회비용과 실제로 지불한 비용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기업의 행위는 그 행위로 거래 상대방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감소할 때보다는 그 때문에 실제로 손실이 발생할 때 더 불공정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행위는 그것이 손실 회피적인 행위일 때보다 이익을 초래했을 때가 훨씬 더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 질문 3 어느 한 인기 차종의 공급이 부족하여 구입 희망자는 2개월이나 기다리는 상태였다. 어떤 딜러는 지금까지는 가격표에 적힌 그대로 판매했지만, 이 차종만큼은 가격표보다 200달러나 더 비싼 가격으로 팔았다.

  • [수용할 수 있다 29%, 불공정하다 71%]

■ 질문 3’ 어느 한 인기 차종의 공급이 부족하여 구입 희망자는 2개월이나 기다리는 상태였다. 어떤 딜러는 지금까지는 가격표에 적힌 것보다 200달러 싸게 판매했지만, 이 차종은 가격표에 적힌 그대로 팔았다.

  • [수용할 수 있다 58%, 불공정하다 42%]

질문 3과 질문 3’는 판매액이 같지만 공정성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질문 3에서는 가격표에 적힌 판매액을 준거점으로 설정해 거기서부터 고객에게 손실이 생기면 불공정하다고 간주되었다.

반면에 질문 3’에서는 준거점이 불명확하다. 준거점을 할인 가격으로 설정하면 가격표의 판매 가격은 손실이지만, 준거점이 가격표에 적힌 판매 가격이라면 얻을 수 없었던 이익(기회비용)으로 간주되므로 불공정한 느낌이 적다. 이 경우에 후자가 더 공정하다는 견해를 나타내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 질문 4 어떤 소기업에 종업원 여러 명이 일하고 있다. 그들의 임금은 그 지역에서는 평균 수준이다. 최근 실적이 이전보다 좋지 않다. 경영자는 내년부터는 임금을 10% 정도 내리기로 했다.

  • [수용할 수 있다 39%, 불공정하다 61%]

■ 질문 4’ 어떤 소기업에 종업원 여러 명이 일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매년 임금의 10% 정도가 보너스로 지급되었다. 그들의 임금은 그 지역에서는 평균 수준이다. 최근 실적이 이전보다 좋지 않다. 경영자는 금년부터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 [수용할 수 있다 80%, 불공정하다 20%]

이 같은 사고방식은 가격이 아닌 임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노동의 공급초과가 존재할 때 임금은 하방경직적(下方硬直的)이 될 수 있다. 즉 임금이 깎이지 않는다. 이런 특성은 최근 들어 트루먼 불리(Truman F. Bewley)가 강조한 것이다. 불리는 주로 고용주들을 인터뷰하여 경기후퇴기에 일시해고제(layoff: 일시적으로 종업원을 해고하고 향후 경영 상황이 개선되면 다시 고용하는 제도)를 실시하면서도 왜 임금 인하가 적은지를 집중적으로 검증하고 있다.

거의 모든 고용주들은 임금을 인하하면 종업원의 사기가 떨어져 회사의 실적이 악화되므로 이를 피하기 위해 임금 인하를 시행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불리는 관대함, 상호간의 원리(reciprocity, 제8장 참조), 공정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공정성이란 무엇인가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기업 행위의 공정성 여부를 판단할 때 준거점과 그 준거점으로부터의 이동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정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경제학적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것은 표준 경제 이론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기업이 가격·임금·이익 등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거래 상대방, 이를테면 종업원, 고객, 임차인이 그 결정을 공정하다고 판단할지 여부를 고려해야만 한다. 즉 기업은 공정성을 제약 조건 가운데 한 가지로 감안해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며, 비록 공적·법적 규제가 없더라도 무작정 이윤 추구적인 행위만 할 수는 없다. 단기적으로는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을지라도 불공정하다는 악평이 나면 장기적으로 이윤을 잃게 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기업은 조심스럽게 의사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기업에서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준법 감시)’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의 준수 시점이 중요하다. 앞에서 살펴본 공정성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도 기업 입장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다. 따라서 기업의 의사 결정 시에는 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공정성이나 윤리적 측면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와 같은 기업의 공정한 행동이 시장이나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곧바로 판정할 수는 없지만 표준 경제 이론과 다른 다음과 같은 영향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수 있다.

질문 4와 질문 4’에서는 기업의 공정성이 임금의 하방경직성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시사한다. 노동의 공급초과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임금은 하방경직적 형태가 된다. 또한 실질임금은 가격이 안정되어 있을 때보다도 인플레이션 시기에 더 큰 조정을 받게 된다.

명목임금을 인하하면 불공정하다고 간주되어 저항이 커진다.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명목임금을 인하하는 일 없이도 실질임금의 인하가 가능하지만, 이 경우에는 불공정하다고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피고용인에게 단순히 매월 봉급만 지불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너스도 적절히 지급하고, 실적 악화 시에는 보너스를 삭감하는 방법으로 임금을 조정하는 것이 고용자에 대한 저항을 줄이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이 일시해고제를 감소시키고 실업률을 낮출 수도 있다.

카너먼과 그 동료들은, 그들이 한창 연구에 몰두하던 1980년대 말에 일본의 실업률이 낮았던 것은 이와 같은 조정 가능한 보너스 제도의 공로라고 주장한다. 또한 총액이 같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하는 소득보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착실히 상승하는 소득을 더 선호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급여체계는 피고용인을 수용하여 전직이나 퇴직을 방지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들어 일본식 경영을 비판하면서 미국이나 유럽식 성과주의나 경쟁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일본식 경영을 재평가하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공정성에 대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일본식 임금체계의 유효성은 재평가할 만하다고 본다.

분배의 공정성

다음은 분배의 공정성 문제로 눈을 돌려보자. 분배의 공정성을 고찰할 때에는 일반적 사고방식이나 표준 경제 이론의 논점에서 벗어나 준거점 의존성과 손실 회피성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분배의 공정성은 분배와 재분배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판단해야 한다. 분배 측면에서는 재산의 크기 또는 부(富)의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효용(평가)의 크기가 공정성의 기준이 된다. 주류 경제학에서 분배의 공정성 개념은 이러한 측면에서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재분배 측면에서는 어떤 상태로부터의 변화를 고찰해야 한다. 이 경우 효용을 결정짓는 것은 프로스펙트 이론이 시사하듯이 준거점으로부터의 이동이다. 특히 그 이동이 이익인지 손실인지에 따라 평가는 크게 달라진다. 공정성에 대한 판단이 준거점으로부터의 이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손실 회피성은 분배 측면보다는 재분배 측면이 더 중요하다. 어느 개인에게나 분배, 즉 부의 수준에 대한 평가는 그 절대적 수준은 물론 비교 대상인 타인의 부(富)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어떤 기준에 의해 평가된다. 이 기준보다 낮은 수준의 분배를 받는 사람은 손실로 생각할 것이며, 반대일 경우는 이익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재분배에 있어서 준거점은 타인의 분배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 상태를 기준으로 한다. 부유한 상태를 준거점으로 하는 경우에 분배의 감소는 손실로 느껴지고, 증가는 이익으로 생각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손실 회피성에 따라 재분배 메리트가 달라진다.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봤을 때, 개인 A에게서 개인 B로 재분배된다는 것은 재분배된 이후의 효용이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A의 손실 평가(효용)와 B의 이익 평가(효용)가 비교되어야만 한다. 특히 재분배 후 이익이 손실보다 커야만 재분배가 정당화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인 간의 비교는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카너먼과 버레이(C. Varey)는 손실 회피성을 기초로 분배와 재분배의 공정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실험 결과를 얻어냈다.

■ 질문 5 희귀한 난치병을 앓고 있는 A와 B 환자 2명이 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다. 투약을 하면 그 병으로 인한 고통은 완화된다. 그러나 분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의사는 하루에 48정밖에 입수할 수 없다. 의사는 그 약을 환자 A, B에게 어떻게 분배할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아래 내용은 의사는 물론 환자 2명 모두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1시간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환자 A는 약 3정이 필요하고, 환자 B는 약 1정이 필요하다. 당신이 의사라면 약 48정을 환자 A와 B에게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분배 후 거래는 할 수 없다.

이 질문에 대해 약을 먹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 시간이 양쪽 모두 같도록 분배한다(A 36정, B 12정)는 답변이 77%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24정씩 분배하면 A는 8시간, B는 24시간 고통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A와 B의 합계) 고통 완화의 최대화라는 관점에서는 24정씩 분배한다는 답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선택한 사람은 소수였다.

다음은 이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재분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 질문 5’ (질문 5와 같은 설정이지만 고통의 상태는 다르다.) 환자 A, B 모두 고통을 1시간 완화하기 위해서 약 1정이 필요하다. 이때 그들에게 각각 약을 24정씩 주면, 2명 모두 고통이 없어진다. 이 상태가 여러 달 계속됐다. 그러나 환자 B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돼 고통을 1시간 완화하기 위해서 약 3정이 필요해졌다. A는 변화가 없다. 당신이 의사라면 약 48정을 A와 B에게 어떻게 재분배할 것인가? 분배 후 거래는 할 수 없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50%의 사람들이 고통 시간을 같게 할 수 있는 재분배(A 36정, B 12정)를 선택했다. 답변자 중에는 그 누구라도 타인의 불운에 대해 분담을 강요할 수 있는 권리가 없으므로 재분배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질문 내용을 바꿔 1명의 상태가 갑자기 좋아져서 재분배를 해야 할 경우의 질문에는 70%의 사람들이 고통 시간을 같게 할 수 있는 재분배를 선택했다.

위의 사례를 근거로 경제적인 분배 문제에 대해 의미 있는 정책적 제언을 곧바로 이끌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분배와 재분배 문제를 고려할 때에는 일정 시점의 상태는 물론 상태의 변화를 나누어 생각하고, 그 변화가 초래하는 평가(효용)의 크기까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물론 그 경우에는 준거점 의존성과 손실 회피성을 충분히 배려해야만 한다.

공정성에 관한 행동경제학적 연구는 아직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떤 것을 공정하게 느끼는지에 따라 공공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를 고찰할 때는 준거점 의존성과 손실 회피성을 무시할 수 없다.

제8장에서 검토하겠지만 공공재의 무임승차(free rider) 문제나,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협력 행동 하는 문제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공정성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이와 관련된 정책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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