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제6장 - 프레이밍 효과와 선호의 성향
제6장
프레이밍 효과와 선호의 성향
선호는 변하기 십상
“컵의 물이 반 정도 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 정도 비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컵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조지 칼린(George Carlin)
“합리적으로 행동할 경우, 우리들은 최선의 선택 또는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사정 속에서 최선의 타협안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때에 따라 인간은 그 선택이나 고려해야 할 사정을 결정할 때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티보르 시토프스키(Tibor Scitovsky) 《인간의 기쁨과 경제적 가치》
프레이밍 효과란
컵에 물이 반 정도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아직 반이나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낙천주의자, ‘이제 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관주의자라는 말이 있다.
물이 가득 들어 있는 컵에서 빈 컵으로 물을 반 정도 옮기는 것을 눈앞에서 보여준다면 원래 가득 들어 있던 컵에는 ‘물이 반만 남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원래 비어 있던 컵은 ‘반이나 차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 어느 쪽이나 ‘물 반 컵’인 것에는 변함이 없는데 말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똑같은 내용을 보고도 상황이나 이유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어떤 질문에 대답할 때, 일반적으로 인간의 의사 결정은 질문이나 문제의 제시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런 사실에 착안해 기대효용이론에 대한 반례로 문제 삼은 사람이 바로 카너먼과 트버스키다.
그들은 이와 같은 표현 방법을 판단이나 선택에 있어서의 ‘프레임(frame)’이라 부르고, 프레임이 달라지는 것에 따라 판단이나 선택이 변하는 것을 ‘프레이밍 효과’라 이름 붙였다.
프레이밍 효과가 나타나려면 기대효용이론의 전제인 ‘불변성’이 성립되어야 한다. 불변성이란 동일한 문제라면 어떤 형태로 표현되더라도 선호나 선택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을 뜻하는데, 매우 중요하면서도 암묵적인 전제다.
■ 질문 1 미국 정부는 아시아에서 발생한 희귀병으로 600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 질병을 박멸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 두 가지 프로그램이 물망에 올랐다. 어느 쪽이 더 희망적인가. 이 병의 생사에 대한 확률은 과학적으로 정확하다. 다음 선택 대안에서 당신은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 A: 200명은 살린다. [72%]
- B: 600명 모두가 살 수 있는 확률 $1/3$, 모두 살 수 없는 확률 $2/3$ [28%]
■ 질문 1’ (문제 설정은 위와 같다.)
- C: 400명은 죽는다. [22%]
- D: 모두 사망하지 않을 확률 $1/3$, 600명이 모두 사망할 확률 $2/3$ [78%]
카너먼은 제3장에서 살펴본 프레임 문제를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프레이밍 효과에 등장하는 ‘프레임’과 프레임 문제에 나타나는 ‘프레임’은 본질적으로 그 의미가 같다. 둘 다 사고(思考)의 틀 짜기, 주의할 테두리 안에서의 한정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프레이밍 효과에 대한 최초의 예로서 트버스키와 카너먼이 제시하여 유명해진 ‘아시아의 질병 문제’를 살펴보자.
질문 1의 상황은 ‘살린다’는 긍정적인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에 실험 참가자에게 이익으로 받아들여졌고, 위험 회피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반면에, 질문 1’에서는 ‘죽는다’는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해 손실로 받아들여지게 함으로써 위험 추구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위의 두 질문은 완전히 동일한 상황이며 표현만 달리한 것에 불과하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실험이 끝난 뒤, 선택이 일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험 참가자에게 알려주었지만, 여전히 실험 참가자는 선택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 질문 2 아무 조건 없이 1,000달러를 이미 얻었다. 그 후에 다음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 A: (1000, 0.5) [16%]
- B: (500) [84%]
■ 질문 2’ 아무 조건 없이 2,000달러를 이미 얻었다. 그 후에 다음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 C: (-1000, 0.5) [69%]
- D: (-500) [31%]
질문 2와 질문 2’는 프레이밍 효과로 ‘복합 복권’에서 불변성이 깨지는 예다. 이 질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B 또는 C를 선택했다.
그러나 최종적인 상태를 주목하면,
$A = (2000, 0.5 : 1000, 0.5) = C$
이며,
$B = (1500) = D$
다. 그럼에도 답을 다르게 선택하게 된 것은 프레이밍 효과 때문이다. 질문 2에서는 이익이 생길 기회로 생각해 리스크 회피적인 선택을 했고, 질문 2’에서는 손실을 피할 기회라고 여겨 리스크 추구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이처럼 프레이밍 효과는 합리적 선택 이론이 충족되어야 할 성질인 ‘표현의 불변성’을 깨는 것이 된다. 애로는 이 불변성을 ‘외연성(外延性, 일정한 개념이 적용되는 사물의 전 범위. 이를테면 금속이란 개념은 금·은·구리·쇠 따위, 동물이라는 개념은 원숭이·호랑이·개·고양이 따위)’이라 불렀다. 즉 개념이 제시하는 바가 같으면 판단 역시 동일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5 이하의 올바른 정수’와 ‘1, 2, 3, 4, 5’라는 표시법은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대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이해하기 쉬운 경우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다음 예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들은 같은 내용의 문제를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질문 3에서 A보다 B가 더 낫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다. 색깔의 비율이 같고, 녹색을 꺼내면 이익이 크고, 청색을 꺼내면 손실이 적기 때문이다. 실험 참가자의 선택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 질문 3 상자에 들어 있는 구슬을 꺼내면, 구슬의 색깔에 따라 (플러스, 마이너스) 상금을 준다고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구슬 옆의 숫자는 구슬 색깔의 비율(%)이며, 아래쪽 숫자는 상금이다.]
| 흰색 90 | 적색 6 | 녹색 1 | 청색 1 | 황색 2 | |
|---|---|---|---|---|---|
| A [0%] | 0 | 45 | 30 | -15 | -15 |
| B [100%] | 0 | 45 | 45 | -10 | -15 |
■ 질문 3’ (질문 3과 동일)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 흰색 90 | 적색 6 | 녹색 1 | 황색 3 | |
|---|---|---|---|---|
| C [58%] | 0 | 45 | 30 | -15 |
| D [42%] | 0 | 45 | -10 | -15 |
한편 질문 3’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든 거의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비슷하다. 실은 C는 A와, D는 B와 각각 같다. C는 A의 청색과 황색을 황색으로 합친 것이고, D는 B의 적색과 녹색을 적색으로 합친 다음 청색을 녹색으로 바꿔놓은 것일 뿐이다. 따라서 2개 질문의 선택 대안은 본질적으로 동일한데, 표현 방식이 조금 어려워지자 선택이 일관되지 않았다. 질문 3’에서는 C보다 D가 낫다는 사실은 잠재되어 있고, D에서는 이익은 1, 손실은 2지만 C에서는 손실이 1이기 때문에 C가 D보다 나은 것처럼 보인다.
정책과 프레이밍 효과
이 같은 프레이밍 효과는 정책 판단에 대한 투표나 설문 조사를 할 때에도 쓰인다. 다음 예는 콰트론(G. A. Quattrone)과 트버스키가 만들었다.
■ 질문 4 정책 J가 채택되면 실업률은 10%, 인플레이션율은 12%가 된다. 정책 K가 채택되면 실업률은 5%, 인플레이션율은 17%로 바뀐다. 어느 정책을 희망할 것인가?
- [J 36%, K 64%]
■ 질문 4’ 정책 J가 채택되면 고용률은 90%, 인플레이션율은 12%가 된다. 정책 K가 채택되면 고용률은 95%, 인플레이션율은 17%로 바뀐다. 어느 정책을 희망할 것인가?
- [J 54%, K 46%]
질문 4와 질문 4’는 실업률과 고용률이라는 표현만 다를 뿐 실제로는 같은 질문이다. 질문 4에서 정책 J와 정책 K를 비교하면 인플레이션율이 12%에서 17%로 상승했지만 실업률은 10%에서 5%로 개선된다. 민감도 체감성에 따라 실업률의 개선은 응답자의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한편 질문 4’에서는 그 반대로 인플레이션의 영향력이 더 크다. 사람들이 이처럼 설정이 단순한 질문을 받는 일은 좀처럼 없겠지만, 정책의 좋고 나쁨을 국민에게 물었을 경우나, 매스컴에서 설문 조사를 할 때는 이와 같은 프레이밍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또는 정부가 정책 방향을 제시할 때,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이 희망적으로 보이도록 전략적으로 프레이밍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 같은 경우에는 의미가 같은 다른 프레임으로 문제를 의식적으로 바꿔보는 대처법이 필요하다.
통계 데이터에서도 프레이밍 효과는 발생한다. 다음 문제 역시 콰트론과 트버스키가 만들었다.
■ 질문 5 어느 나라에서는 이민자의 범죄율을 감소시키려 한다. 법무성은 이민자 중 젊은 층의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계획으로 1억 달러의 예산을 지불하려 한다. 이 계획은 젊은이들에게 취업의 기회나 레크리에이션 시설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 검토 중인 2가지 정책 J와 K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2가지 정책은 예산의 분배 방법만 다를 뿐이다.
A국에서 온 이민자 수와 B국에서 온 이민자 수는 거의 비슷하다. 통계를 보면 A국 사람 중 3.7%, B국 사람 중 1.2%가 25세까지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다. 정책 J는 A국에 5,500만 달러, B국에 4,500만 달러를 배분하는 것이다. 정책 K는 A국에 6,500만 달러, B국에 3,500만 달러를 배분하려 한다. 이와 같은 정보를 기초로 할 때 정책 J와 정책 K 가운데 어느 정책을 선택할 것인가?
- [J 41%, K 59%]
■ 질문 5’ (스토리와 정책은 범죄율을 제외하고 같은 상황이다.) 통계를 보면, A국 국민 중 96.3%, B국 국민 중 98.8%는 25세까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어느 쪽 정책을 선택할 것인가?
- [J 71%, K 29%]
질문 5와 5’에서도 3.7%와 1.2%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는’ 경우에는 크게 느껴지고, 96.3%와 98.8%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면’ 그 차가 작게 느껴져서 프레이밍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통계 데이터를 어떻게 프레이밍해야 할지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매우 중대한 정치적·경제적 영향을 끼친다.” (콰트론과 트버스키, 1988)
초깃값 효과
퍼스널 컴퓨터의 다양한 설정을 초기 설정(default)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는다든지, PC 업체에서 설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초깃값(설정) 효과란 두 개의 상태 A와 B 어느 쪽이 초깃값이 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게 된다. 이것 역시 프레이밍 효과의 일종이다. 앞에서 서술한 현상 유지 바이어스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초기 설정에 관한 대규모 사회적 실험이 (의도적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전개된 적이 있다. 뉴저지 주와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는 두 가지 자동차 보험을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보험료가 싸지만 보험 범위가 한정된다. 다른 하나는 보험료는 비싸지만 보험이 적용되는 범위의 폭이 넓다. 뉴저지 주에서는 초기 설정으로 자동차 소유자는 자동적으로 보험료가 싼 보험에 가입하고, 할증 보험료를 지불하면 보험 적용 범위가 넓지만 비싼 보험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992년에는 보험 가입자의 80%가 초기 설정이 저렴한 보험에 가입했다.
한편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는 반대로 보험료가 비싼 쪽을 초기 설정으로 두어 자동적으로 가입하게 했는데, 보험료가 저렴한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 1992년에 보험 가입자의 75%는 비싼 보험 쪽을 선택했다.
이는 사람들이 초기 설정 쪽을 선택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존슨(E. J. Johnson)과 허시(J. Hershey)는 만일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뉴저지 방식을 채용했다면 이 지역 주민들은 총 20억 달러 이상 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장기 기증 의사표시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고(성인의 약 10%), 미국도 마찬가지다(약 28%). EU에서는 장기 기증에 동의한 사람이 적은 나라(덴마크 4%, 독일 12%, 영국 17%, 네덜란드 28%)와 많은 나라(스웨덴 86%,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헝가리, 폴란드는 98% 이상)로 확실히 구분된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일본, 미국, 덴마크 등 동의자가 적은 나라에서는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한 기증자로 간주하지 않는 것에 반해 오스트리아처럼 동의자가 많은 나라에서는 장기 기증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한 기증 의사가 있다고 간주한다. 이 역시 초기 설정의 차이가 결과치가 크게 달라지는 원인이다.
존슨과 골드스타인(D. Goldstein)은 이 사실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그들은 초기 설정이 ‘장기 기증에 합의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거부할 수도 있는 경우, 초기 설정이 ‘장기 기증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장기 기증도 선택할 수 있는 경우, 초깃값은 설정하지 않고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있는 설정, 이렇게 3가지 설정을 만들어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초깃값이 ‘합의’로 되어 있을 경우에는 82%가 초깃값인 ‘합의’를 선택하였다. 반면에 초깃값이 장기 기증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일 경우에 초깃값을 선택한 사람은 58%, 장기 기증을 하겠다는 쪽으로 변경한 사람은 42%밖에 안 되었다. 어느 쪽이나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경우에는 79%가 장기 기증에 합의하겠다는 내용을 선택했다.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경우를 실제로 장기를 제공할 의사가 있는 사람의 비율로 간주하면, 초기 설정이 장기 기증의 의사표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즉 초기 설정을 선택한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사람들이 선호하여 결정했다고는 단정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존슨과 골드스타인은 초기 설정이 사람들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원인은 3가지라고 말한다. 우선, 공공 정책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초깃값은 정책 결정자(대부분은 정부)의 ‘권유’로 생각하여 좋을 것이라 여기고 받아들인다.
둘째로 의사 결정을 할 때는 시간이나 노동력이라는 비용이 들지만 초깃값을 받아들이면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 기증은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동반하기 때문에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의식적인 의사 결정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초깃값이 아닌 방식의 선택 대안을 선택할 경우에는 신청 서류를 쓴다거나 발송할 필요가 있다면 그 비용은 의외로 크다.
셋째로 초깃값이란 현상을 말하며, 그것을 포기하는 일은 앞에서 서술했듯이 손실로 받아들여 그 손실을 피하기 위해 초깃값을 선택한다. 손실 회피성이 작동한 것이다.
네덜란드는 장기 기증의 초기 설정이 ‘동의하지 않음’으로 작성된 나라 중에서는 비교적 동의자가 많다. 이는 1998년에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캠페인을 전개하여 80%에 달하는 국민에게 우편을 발송해 동의하도록 권유한 결과다. 그러나 비용에 비해 그다지 큰 효과는 없었다.
장기 기증을 초깃값으로 설정해야 할지 말지에 대해서는 윤리·기술·문화·경제 등 다양한 요소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가볍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엇을 초깃값으로 정할지, 즉 무엇을 초깃값으로서 프레임할지는 그 나라의 정책이 성공하느냐 마느냐 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화폐착각
화폐착각이란 사람들이 금전에 대해 실질가치가 아닌 명목가치를 기초로 판단하는 것을 말하는데, 프레이밍 효과 가운데 하나다. 예를 들면 임금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은 화폐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명목가치란 액면 그대로의 가치를 말하며, 실질가치란 액면가치(명목 값)에서 인플레이션율을 제외한 값을 말한다. 예를 들면 연간 급여가 1,000만 원에서 1,200만 원으로 올랐다고 해도 인플레이션율이 10%였다고 하면 실질적인 임금 상승률은 20%가 아닌 10%밖에 되지 않는다. 이 10%가 실질 임금 상승률이다. 화폐착각은 경제학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있으며 경제학자인 어빙 피셔는 《화폐착각론》(1928)이라는 저서를 저술했을 정도다.
샤피르(Eldar Shafir), 다이아몬드(P. Diamond), 트버스키는 공항이나 쇼핑몰에서 일반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 질문 6 A와 B는 같은 대학을 1년 차이로 졸업하고 두 사람 모두 같은 회사에 입사했다. A는 1년 차 급여가 3만 달러이고 그동안 인플레는 없었다. 2년 차 급여는 2%(600달러) 올랐다. B는 1년 차 급여가 3만 달러였지만 인플레이션율은 4%였다. 2년 차의 급여는 5%(1500달러) 올랐다.
① 경제적 조건: 2년 차가 됐을 때, 경제적 조건은 어느 쪽이 더 좋을까?
- [A 71% / B 29%]
② 행복도: 2년 차가 됐을 때,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 [A 36% / B 63%]
③ 업무의 매력: 입사 2년 차가 되자 양쪽 모두 타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어느 쪽이 지금의 직장을 버리고 새로운 회사로 옮길까?
- [A 65% / B 35%]
질문이 ①번처럼 경제적인 조건에 관한 것일 때에는 거의 모든 답변에서 화폐착각을 찾아볼 수 없다. 즉 명목가치가 아닌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실질가치를 기초로 답변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②번처럼 행복도에 관해서는 화폐착각을 나타낸다. 실질가치로 따져보면 급여가 적은데도 B가 더 행복하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③번처럼 전직할 가능성은 A가 높을 거라는 판단을 낳았고, 처음 질문과 모순되는 답변을 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단순히 명목가치와 실질가치를 혼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질문이 순수하게 경제적인 측면만을 고려하여 사고가 그쪽으로 집중되어 있을 때는 화폐착각이 발생하지 않지만, 질문이 조금 모호해지면 명목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강한 바이어스가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감을 결정짓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경제적 조건 이외의 요인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이유로 판단이 역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음 질문 역시 샤피르가 실험한 것이다.
■ 질문 7 어느 나라에서는 반년 만에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급여와 물가 등 모든 것이 25% 상승했다. 지금은 소득이나 지출이 이전보다 25% 많아졌다.
① 반년 전에 가죽 의자를 사려고 계획했다. 그 의자 가격은 반년 동안 400달러에서 500달러로 올랐다. 반년 전에 비해 지금은 더 사고 싶어질까, 아니면 사고 싶지 않을까?
- [더 사고 싶어졌다: 7% / 동일: 55% / 사고 싶지 않아졌다: 38%]
② 반년 전에 자신이 소유한 앤티크 의자를 팔려고 계획했다. 반년 동안 그 의자 가격은 400달러에서 500달러로 올랐다. 반년 전에 비해 지금은 더 팔고 싶어질까, 아니면 팔고 싶지 않아졌을까?
- [더 팔고 싶어졌다: 43% / 동일: 42% / 팔고 싶지 않아졌다: 15%]
처음 질문에는 과반수가 ‘동일’하다고 대답했지만 명목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에 ‘사고 싶지 않다’는 답도 많았다. 둘째 질문에는 ‘동일’하다는 답변은 절반 이하고, 명목가치가 올랐기 때문에 ‘더 팔고 싶다’는 답변이 많아졌다. 확실히 화폐착각을 일으켰다고 말할 수 있다.
세일러는 와인 애호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 질문 8 1982년산 보르도 와인을 20달러에 사서 가지고 있다. 현재 옥션에 내놓으면 75달러에 팔 수 있다. 그러나 와인을 팔지 않고 자신이 마시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 행위의 비용으로 다음 보기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근접할까?
- [0달러, 20달러, 20달러 + 이자, 75달러, 마이너스 55달러]
마지막 선택 대안인 마이너스 55달러는 75달러짜리 와인을 20달러에 샀기 때문에 55달러의 이익(마이너스 55달러의 비용)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답변 비율은 순서대로 30%, 18%, 7%, 20%, 25%였다. 경제학적으로 올바른 값(75달러)은 소수였지만, 이 대답을 한 사람의 태반은 경제학자였다. 반 이상이 ‘비용 없음’이나 ‘벌었다’로 답변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것도 일종의 화폐착각 현상이다.
제5장에서 살펴본 공정성에 대한 판단에서도 화폐착각이 발생한다.
■ 질문 9 어느 회사는 약간 이익을 내고 있다. 그 회사는 불황 지역에 있고, 심각한 실업은 있지만 인플레는 없다.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다. 이 회사는 금년에 임금을 7% 삭감하기로 했다.
- [수용할 수 있다 38%, 불공정하다 62%]
■ 질문 9’ 어떤 회사는 약간 이익을 내고 있다. 그 회사는 불황 지역에 있고, 심각한 실업은 물론 인플레이션이 12%나 된다.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다. 이 회사는 금년에 급여 인상은 5%밖에 하지 않기로 했다.
- [수용할 수 있다 78%, 불공정하다 22%]
질문 9와 질문 9’에서 실질임금은 확실히 같다. 그럼에도 공정성에 대한 판단은 정반대다. 명목임금의 인하는 종업원에게 손실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회사의 행위가 불공정하다고 판단되었다. 반면에 인플레이션 때문에 명목임금은 실질적으로 줄어들었는데도 종업원에게는 이익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회사의 행위가 공정하다고 간주되었다. 준거점으로부터의 이동 방향이 문제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예는 가상적 상황에서 발생한 화폐착각을 보여준 것이지만, 쿠어먼(P. Kooreman)과 동료들은 현실에서도 화폐착각이 발생하는 것을 관찰했다.
네덜란드에서는 2002년에 통화 단위인 길더를 유로(Euro)로 전환했다. 교환 비율은 1유로에 약 2.2길더였다. 네덜란드의 어떤 지역에서 해마다 걷힌 자선(charity) 모금액은 유로 도입을 전후해 각각 몇 년 동안은 거의 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로가 도입된 2002년에만 유독 모금액이 전년 대비 약 10% 증가했다.
유로와 길더의 교환 비율이 약 2.2였기 때문에 이전처럼 2,000길더를 기부하려면 약 910유로만 내면 되었지만, 사람들이 ‘1유로=2길더’로 간주하여 1,000유로를 기부한 것이 모금액 증가의 원인이라고 쿠어먼은 추측했다. 화폐착각이 실제로 발생한 예다.
프레이밍 효과와 초깃값의 선호, 화폐착각의 예는 실험자나 초기 설정을 지정하는 사람 등 외부에서 제공된 프레임이 의사 결정자의 선택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프레이밍 효과를 수동적 프레이밍 효과 또는 외적 프레이밍 효과라 한다.
한편, 의사 결정자가 현상을 능동적·자발적으로 어떤 프레임에 밀어 넣고 그것에 따라 선호나 선택이 지배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능동적 프레이밍 효과 또는 내적 프레이밍 효과라 한다. 이 같은 프레이밍 효과의 예로서 세일러의 멘털 어카운팅에 대해 살펴보자.
멘털 어카운팅(Mental Accounting)
세일러는 사람들이 금전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할 때는 다양한 요인이나 선택 대안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좁은 프레임을 만든 다음 그 프레임에 끼워 넣어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세일러는 이 같은 프레임을 기업의 회계장부나 가정의 가계부에 비유하여 멘털 어카운팅(mental accounting, 심적 회계, 심적 계산)이라 이름 지었다.
멘털 어카운팅은 사람들이 금전에 대한 행위를 평가하고 관리하고 기록하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적 조작이며,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멘털 어카운팅은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거래나 매매의 평가 수단에 대해 프로스펙트 이론의 사고를 기초로 부(富)나 자산 전체가 효용을 낳는 것이 아니라 준거점으로부터의 변화나 손실 회피성을 중요시한다.
둘째, 가계부에 기입할 때 ‘식비, 난방비, 오락비’ 등의 항목으로 분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래마다 마음속으로 계정 항목을 설정하고 손실(적자)이나 잉여(흑자)를 계산한다.
셋째, 각각의 항목이 적자인지 흑자인지를 평가할 때 시간 간격을 어떻게 두는가 하는 것이다. 즉 평가를 하루 단위로 할지, 1주일이나 1개월 간격으로 할지, 또는 더 길게 잡을 것인지를 중시한다. 경마장을 예로 들면, 그날 최종 레이스에서는 예상 밖의 결과를 노리며 돈을 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바이어스가 있다. 경마에서 손해를 본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 손실을 만회하려고 최종 레이스에서는 예상 밖의 주자에게 돈을 걸어보려는 심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즉 경마의 수지를 하루 단위로 하여 그 중에서 수지를 계산하고 있는 셈이다. 1개월 또는 1년을 단위로 경마 성적을 합산하여 생각한다면 이 같은 행동은 틀림없이 줄어들 것이다.
카머러와 동료들은 뉴욕의 택시 운전수들이 노동시간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조사했다. 조사 결과, 하루 매상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그날 영업을 중지하는 택시 운전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대체로 택시를 빌려 영업을 하고 있었고, 12시간을 단위로 회사에 고정 액수를 납입하는 사납금제 방식이 많았다. 사납금을 초과하는 금액은 모두 자신의 수입이 된다. 따라서 12시간 일해도 되고, 12시간 전에 목표액을 달성할 수도 있다. 물론 시간당 수입액은 매일 다르지만 대부분은 목표액을 결정해놓고, 목표액을 달성하면 그날 영업을 끝내는 택시 운전수들이 많았다.
이런 행위는, 하루 단위로 노동시간을 정해두지만 실질임금이 높을수록 노동공급이 많아지는 주류 경제학 이론과는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비 오는 날에는 택시 잡기가 평일보다 어려운 상황이 자주 있다. 비 오는 날에는 택시 이용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도중에 영업을 중지해버리는 운전수가 많아서 공급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멘털 어카운팅의 적절한 예로 자주 거론되는 것은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예다.
■ 질문 10 당일 티켓이 50달러인 콘서트장에서 티켓을 사려는데 50달러짜리 지폐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았다. 50달러를 지불하고 콘서트 티켓을 살 것인가?
■ 질문 10’ 전날 50달러를 지불하고 산 티켓을 가지고 콘서트장에 갔는데 그 티켓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았다. 당일 티켓 역시 50달러인데 티켓을 살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질문 10에서는 “네”라고 답하고 질문 10’에서는 “아니오”라고 답하지 않을까? 트버스키와 카너먼의 실험에서는 “네”라고 대답한 사람은 질문 10에서는 88%, 질문 10’에서는 46%였다.
양쪽 모두 50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을 잃어버린 것에는 변함이 없는데 답변이 달라진 원인은 멘털 어카운팅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티켓을 사는 행위는 ‘오락비’라는 계정항목에 포함되어 있고, 질문 10에서처럼 현금 50달러를 분실한 것은 이 ‘오락비’ 계정 항목의 수지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문 10’에서는 동일한 콘서트를 보는 데 합계 100달러를 지불하는 격이기 때문에 ‘오락비’로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출을 주저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은 주류 경제학에서 가정한 화폐의 대체성(fungibility)에 역행한다. 화폐의 대체성이란 화폐를 어떤 경로로 얻건, 어떤 일에 지출되었건 간에 같은 화폐이기 때문에 완전히 서로 다른 용도로 변경(대체)이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합리적 행동을 위해서는 필요한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멘털 어카운팅에 따라 계정별로 할당된 돈은 각각의 계정별로 사용된다.
세일러와 존슨은 도박 등으로 딴 ‘불로소득’은 일상적인 보통의 수입과 달리 취급되어 다시 새로운 도박에 지출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정하게 얻은 재물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말이 맞다.
액수가 큰 지출의 일부로 사소하게 취급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2,000만 원이나 하는 새 차를 구입할 때는 옵션으로 70만 원 정도인 내비게이션을 쉽게 구입할 수도 있지만, 현재 내비게이션이 없는 차에 70만 원짜리 내비게이션을 다는 일은 약간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TV나 오디오 등 가전제품을 사면 5,000원으로 2년간 품질을 보증하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고, 자신도 모르게 가입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보유한 TV나 오디오를 2년 동안 보험 없이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일부러 새롭게 2년간 보증해주는 보험에 과연 가입할까? 쇼핑을 할 때 금액이 크면 추가 금액이 적게 느껴지는 것처럼, 고장 났을 때 발생하는 비용에 대비해 무의식중에 보증보험에 가입해버리는 것이다. 가전업계와 보험업계의 교묘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매몰원가(Sunk Cost) 효과
연회비 50만 원을 지불하고 테니스 클럽에 가입했다. 연습장에 1개월 정도 다녔는데 관절을 다쳤다. 지금 그만두면 회비를 반환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아픔을 참고 계속 연습장을 다녔다. 왜냐하면 “50만 원을 버리기 아까워서”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코리안시리즈 티켓을 2만 원 주고 구입했는데 공교롭게도 감기 기운으로 몸이 좋지 않다. 야구장까지 혼잡한 전철을 타고 2시간이나 가야 된다면 경기를 보러 갈 것인가? 만일 이 티켓이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티켓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자신이 산 티켓이라면 경기를 보러 가겠지만, 다른 사람이 준 티켓이라면 가지 않겠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50,000원을 지불하고 뷔페 레스토랑에 갈 경우, 배가 가득 차서 그 이상 먹으면 배탈이 날 염려가 있거나 다이어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전 생각에 과식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서는 과거에 지불한 후 되찾을 수 없게 된 비용을 매몰원가(sunk cost) 또는 매몰비용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의 의사 결정에는 장래의 비용과 편익만을 고려 대상에 넣어야 하며, 매몰원가는 계산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가르친다. 과거의 일은 잊으라고 말이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살펴봤듯이 이미 지불한 매몰원가는 장래의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 매몰원가 효과란, 앞으로의 의사 결정에 관계가 없는 매몰원가를 고려 대상에 넣었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결정을 해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에는 금전적인 비용뿐만 아니라 노동력이나 시간도 포함된다.
막대한 노동력과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우선은 실행에 옮겨야 한다든지, “이미 배에 올라탔기 때문에 도중에 내릴 수 없다”는 주장은 회사나 관청, 개인을 막론하고 누구나 자주 하는 것이 아닐까? 더욱이 과거에 지불한 금액이 크면 클수록 장래의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세일러는 매몰원가 효과가 왜 발생하는지 멘털 어카운팅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50,000원으로 콘서트 티켓을 사는 행위는 실제로 소비하는 날, 즉 콘서트에 가기 전에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티켓을 사는 당일 ‘콘서트’라는 계정 항목이 마음속에 개설되어 그 항목은 실제로 콘서트장에 갔을 때 닫힌다. 만일 콘서트에 가지 않았다면 구좌는 계속 열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매몰원가인 티켓 대금이 마음에 걸린 채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마음속 걸림돌은 사라져간다.
세일러는 비싼 가격으로 구입했지만 구두가 발에 잘 맞지 않아서 발이 아픈 구두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한다. 우선 몇 번인가 구두를 신기 위한 시도를 할 것이다. 이때 싼 구두보다는 비싼 구두를 샀을 때 더 많이 시도할 것이다. 끝내는 신발장에 넣어두겠지만 버리기는 쉽지 않다. 보관 기간은 값싼 구두보다 비싼 구두 쪽이 길다. 그리고 아무리 비싼 구두라도 마지막에는 버릴 결심을 한다. 구두 값에 대한 지불은 ‘상환된’ 것으로 간주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매몰원가 효과는 점차 소멸해간다.
아크스(H. R. Arkes)와 블루머(C. Blumer)는, 6개월마다 회비를 지불하고 회원권을 갱신하는 헬스클럽에서 회비를 지불한 직후에는 운동하러 나오는 사람이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인원수가 줄다가 반년 후 회원권 갱신 직후에 다시 증가하는 패턴을 발견했다.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
아크스와 블루머는 매몰원가 효과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손실 회피성 이외에 2가지 요인을 더 들고 있다.
첫째, 평판의 유지다. 계속해서 투자하는 것이 무모한 짓이라면 도중에 계획을 중지해야 하지만, 이는 과거의 결정이 잘못된 것임을 의미한다. 이때 과거에 투자를 결정한 사람이나 조직은 ‘헛일을 했다’는 악평을 두려워하게 되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업을 중단하지 않고 지출을 계속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둘째, 휴리스틱 과잉의 일반화다.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는 표어나 규칙은 어릴 때부터 자주 들어온 말로 의사 결정을 할 때 휴리스틱 역할을 한다. 이 휴리스틱은 다양한 곳에 적용되어 효력을 발휘하는데, 매몰원가 휴리스틱을 적용해서는 안 될 곳까지 적용해버려 착오가 발생하게 만든다. 즉 이미 지불해버린 비용을 ‘헛되지 않게’ 만들려고 과거의 지출에 연연하게 된다.
아크스와 에이튼(P. Ayton)은 어린이가 매몰원가에 얽매이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어린이는 매몰원가에 얽매이는 일이 드물지만, 연령이 많아짐에 따라 매몰원가 효과를 인정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어린이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는 휴리스틱을 연령과 함께 몸에 익혀가고, 그것을 과잉 적용한 결과라는 것을 의미한다.
소먼(D. Soman)과 치머(A. Cheema)가 위의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들은 ‘굴러들어온 호박’으로 얻은 수입의 지출은 매몰원가 효과가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운 좋게 손에 넣은 돈을 지출할 때에는 ‘낭비’라는 심리가 별로 작용하지 않고, 매몰원가에 구애되지 않는다. 뜻밖에 얻은 수입은 어떻게 사용하든 낭비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매몰원가 효과는 ‘콩코드(Concorde)의 착각’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국·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개발 도중 엄청난 경비를 들였고, 완성하더라도 채산을 맞출 가망성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미 거액을 개발 자금으로 투자했기 때문에 도중에 중지하는 것은 더 큰 낭비라는 이유로 개발 작업이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1981년에 테네시 주 톰빅비(Tombigbee) 하수로 건설 사업에 대한 중지 여부를 논의한 일이 있다. 이때 사업 중지를 반대한 어느 상원 의원은 “만일 사업을 중지한다면 납세자의 세금을 함부로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있다.
각국의 공공사업에서도 장래 채산성이 나쁘고 환경 파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고 계획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즉각 사업을 중지해야 하는데도, “지금까지 투자한 것이 헛되게 된다”는 이유로(그 밖에도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사업을 중지하지 않고 강행하는 사례가 있지 않을까 싶다.
‘엎지른 물’이나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은 매몰원가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을 시사하는 휴리스틱이다.
선호는 상황에 따라 변한다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선호’ 특징에 대해 생각해보자. 트버스키와 세일러는 사람들이 사물을 판단하는 기호에 대해 재미있는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야구 심판 3명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 심판 1: “본 대로 판정한다.”
- 심판 2: “있는 그대로 판정한다.”
- 심판 3: “내가 판정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각각의 발언을 가치나 선호로 바꿔 생각하면 가치나 선호의 성격이 다른 3가지 견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가치는 존재한다. 체온처럼.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느낀 채 점점 바이어스를 동반하여 보고한다. - 심판 1의 견해
- 사람들은 가치나 선호를 구구단처럼 잘 알고 있다. - 심판 2의 견해
- 가치나 선호는 도출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 심판 3의 견해
주류 경제학에서 합리성의 철저한 옹호론자였던 조지 스티글러(George Joseph Stigler)와 게리 베커(Gary Stanley Becker)는 “기호에 대해 논해도 소용없는 것은 로키 산맥에 대해 논해도 소용없는 것과 같다. 어느 쪽이나 거기에 있고, 내년에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고 서술하고, 모든 사람의 선호는 모순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사 결정에서 선호를 문제 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단정했다.
이와 달리, 트버스키와 세일러는 심판 3의 견해, 즉 선호는 의사 결정자나 결정해야 할 문제가 놓인 상황이나 문맥에 의존하여 형성된다는 사고방식을 강조한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선호에 대해 꽤 엄격한 가정하에서 설명하는데, 선호는 모든 선택 대안에서 판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나하고 일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해?”, “그런 건 결정할 수 없어”라는 식이 아니라, 항상 어느 쪽이 좋은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선호는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모순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정하며 불변한다고 본다. 의사 결정자는 이와 같은 선호 체계, 이른바 선호 리스트를 가지고 그 내용을 숙지하고 있어서 선택 문제가 발생하면 선호 리스트와 대조해보고 가장 선호하는, 즉 가장 효용이 큰 선택 대안을 선택한다고 한다.
스파게티보다 라면이 좋고, 라면보다 메밀을 좋아한다면, 스파게티보다 메밀을 좋아한다는 선호는 자연스럽다. 이처럼 취향이 일관되어 있고 모순이 없는 것을 ‘선호의 이행성(移行性, transitivity)’이라 한다. 그러나 이처럼 극히 자연스러운 성질조차 만족시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과자를 사러 갔다고 가정하자. 과자 몇 종류가 있는데 가격 차이가 500원 이내라면 질이 좋은 쪽을 선택하고, 그 이상 가격 차가 벌어진다면 싼 쪽을 선택하는 것이 일상적인 쇼핑으로서는 타당한 기준일 것이다. 사도 좋을 만한 과자 3종류가 있는데, 품질에 따라 A는 2,500원, B는 2,000원, C는 1,500원이라 하자. 기준에 따르면 A와 B에서는 A(좋은 쪽)를 선택하게 되고, B와 C에서는 B(좋은 쪽)를 선택하지만, A와 C에서는 C(싼 쪽)를 선택하기 때문에 이행성을 충족할 수 없다.
또한 합리적인 선호 기준이라면 ‘관계없는 선택 대안으로부터의 독립성’이라는 기준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선택 대안 2개 사이에서 선호의 순서는 새로운 제3의 선택 대안이 등장해도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식당에 들어갔더니 오늘의 추천 정식으로 불고기 정식과 돈가스 정식이 있었다. 나는 ‘불고기 정식’으로 결정했는데 식당 주인이 “햄버거 정식도 있다”고 했을 때 “그럼 돈가스 정식으로 변경”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식당 주인이 제시한 기준이 아주 강한 기준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식당 주인이 제시한 기준처럼 약한 기준 때문에 원래 선택이 깨지는 일이 수많은 사례에서 확인되고 있다.
중간 대안이 선택된다
시몬슨(I. Simonson)과 트버스키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학생 그룹에서 무작위로 선택한 사람에게 6달러를 준 다음 6달러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도 되고, 고급 제품인 크로스 볼펜과 바꿔도 된다고 했다. 108명 중 64%가 6달러를 보관했고, 36%가 볼펜과 교환했다고 한다.
다음은 제3의 선택 대안으로서 싼 볼펜을 첨가하여 위와 마찬가지로 교환 희망자를 조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52%가 6달러를 보관했고, 46%가 고급 볼펜과 바꾸기를 바랐다(나머지 2%는 싼 볼펜을 희망했다). 싼 볼펜이라는 제3의 선택 대안이 등장함에 따라 6달러와 고급 볼펜 사이의 선호가 바뀐 것이다.
또한 시몬슨과 트버스키는 품질이 좋은 순으로 가격도 올라가는 3가지 미놀타 카메라로 같은 실험을 했다. 카메라 A는 성능은 떨어지지만 값은 싸고(169.99달러), B는 양쪽의 중간 값(239.99달러)이며, C는 고성능이지만 비싼 카메라다(469.99달러).
우선 실험 참가자 106명에게 A와 B 중 어떤 카메라를 선택할지 물었더니 정확히 A와 B의 비율이 각각 50%씩이었다. 그런데 C를 추가해 세 종류 중에서 어떤 카메라를 선택할지 묻자 A 22%, B 57%, C 21%가 되었다. 양극단의 카메라는 배제되고 한중간의 제품이 선택된 것이다. 이 현상을 ‘극단 회피성’이나 ‘타협 효과’라고 말한다.
시몬슨은 더욱 인상적인 실험을 했다. 그는 탁상용 전자계산기 다섯 종류를 준비했다. A부터 E의 순으로 기능이 많아지지만 고장률도 높아진다.
우선 A, B, C 3종류를 보여주고 선택하게 했더니 5%, 48%, 47%로 나타났다. 그다음 B, C, D 3종류에서는 순서대로 26%, 45%, 29%였고, B와 C 사이의 선호는 역전되었다. 뿐만 아니라 C, D, E에서는 순서대로 36%, 40%, 24%가 되어 C와 D 사이의 선호가 역전되었다. 어떤 경우에서든 중간에 놓인 선택 대안이 선택된 것이다.
장어 도시락 가게에서 송(松)·죽(竹)·매(梅) 3가지 장어 도시락이 있을 경우에는 죽을 선택하고, 횟집에서 회가 특상·상·보통이 있을 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상을 선택하는 심리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성향은 마케팅에서 자주 이용되고 있다. 특히 팔고자 하는 상품을 의도적으로 한중간 위치에 두는 경우도 있다.
이유 있는 선택
샤피르, 시몬슨, 트버스키는 ‘이유에 기초한 선택(reason based choice)’이라는 이론을 전개했다. 선택 대안을 고르거나 결정을 내리려면 그 선택 대안을 선택한 납득할 만한 이유나 스토리가 필요하며, 합당한 이유가 있고 선택을 합리화할 수 있으면 설령 모순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샤피르 일행이 실험한 다음 사례를 살펴보자. 당신은 판사이며, 이혼 문제를 취급하고 있고, 아이에 대한 친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부모 A는 소득, 건강 상태, 노동시간이 평균적이며, 어린이와 관계가 원만하고 안정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부모 B는 소득이 평균 이상이고, 아이와 관계가 매우 친밀하며 사회생활도 매우 활동적이지만, 일 때문에 출장이 잦고, 건강 상태에 약간 문제가 있다고 가정하자.
1그룹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만약 친권을 준다면 어느 쪽 부모가 좋을지 물었더니 B를 선택한 사람이 64%였다. 2그룹의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어느 쪽에 친권을 주는 게 적당하지 않은지를 묻자 B를 선택한 사람이 55%였다. 즉 친권을 인정할 경우에도, 거부할 경우에도 B가 더 많이 선택된 것이다.
이 답변은 모순되지만 원인은 선택하기 쉬운 타당한 이유 여부에 있다고 생각된다. 부모 A는 매우 평범하며 친권을 주기에도 거부하기에도 적극적으로 판단할 재료가 빈약하다. 그러나 이에 비해 부모 B는 친권을 주기에 적합한 이유(아이와 친밀한 관계, 고수입)가 있지만, 거부하기에도 충분한 이유(건강 상태가 불안한 것과 잦은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일)가 있다. 이는 선택하기 쉬운 이유가 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을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대학의 학과 선택, 선거 때 후보 선택, 리조트 호텔 선택 등에서도 충분한 이유가 있으면 대립하는 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이 다반사다. 이러한 사례는 대표성 휴리스틱에 의해 판단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스토리가 있으면 선택된다
선택 대안이 대립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을 때, 선택이 어떻게 변하는지 샤피르와 그 동료들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소니와 아이와가 단 하루만 CD 플레이어를 바겐세일로 판매했다. 인기 있는 소니 CD 플레이어가 99달러, 아이와의 고급 CD 플레이어가 169달러였는데, 양쪽 모두 정가보다 훨씬 싸게 팔고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 아니면 다른 플레이어를 좀 더 조사하기 위해 구입을 미룰지 묻는 질문에 대해 아이와나 소니 제품 구입을 선택한 사람은 각각 27%씩이었으며, 구입을 미루겠다는 사람이 46%였다.
다음은 소니 CD 플레이어만 바겐세일을 하고 있었다. 인기 기종이며 가격은 99달러다. 이 제품을 구입할지, 아니면 구입을 미룰지를 묻는 질문에 66%가 구입하겠다, 34%가 구입을 미루겠다고 답변했다.
또한 셋째 상황으로, 똑같은 소니 모델에 가격은 99달러, 아이와의 하위 모델에 가격은 109달러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답변은 소니 제품을 구입하겠다는 사람이 73%, 아이와를 구입하겠다는 사람이 3%, 구입을 미루겠다는 사람이 24%로 나타났다.
맨 처음 상황에서는 CD 플레이어를 싸게 살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지만, 아이와를 구입할지 또는 소니를 구입할지 결정해야 하는 갈등 때문에 주저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답변자의 과반수가 구입하겠다는 결정을 했지만, 나머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구입을 미루겠다고 판단했다. 둘째 상황처럼 성능이나 가격에서 매력적인 모델을 팔고 있으면, 구입 결정에 대한 갈등은 적어지게 된다. 따라서 구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다. 셋째 상황에서는 갈등이 더 줄어든다. 좋은 제품을 싸게 팔기 때문에 소니를 구입하겠다는 결정을 하기가 쉬운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둘째 상황에서 소니 제품을 구입하겠다고 결정한 사람이 답변자의 66%였는데, 셋째 상황에서는 73%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하위 선택 대안(아이와)이 존재함에 따라 제3장에서 살펴본 기준점 구실을 하였고, 이 때문에 소니 제품이 더 매력적으로 보여서 구입 의사를 결정하기 위한 충분한 이유가 생긴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상황에서 구입을 선택한 사람은 54%였지만, 둘째 상황에서는 66%로, 셋째 상황에서는 73%로 늘어났다. 이것은 갈등이 줄어들고 자기 자신을 납득시킬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상황에서는 구입 의사가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러는 주식시장의 행위에서도 합당한 이유를 기초로 한 선택이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였다. 일반 투자가는 주식에 관한 수익률 같은 지표보다는 그 회사나 제품에 대한 역사, 세간의 평가 등 ‘소문(이야기)’에 더 큰 영향을 받기 쉽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심플한 이유가 있거나, 소문에 따라 정당화되는 것을 희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택 대안은 많을수록 좋을까?
경제학이나 의사결정이론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 대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사람들의 만족도가 커질 거라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과연 그럴까? 이 이론에 의문을 던진 시나 아이옌거(Sheena S. Iyengar)와 마크 레퍼(Mark R. Lepper)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슈퍼마켓에서 한 진열대에는 잼 6종류를, 다른 진열대에는 잼 24종류를 진열한 다음에 1달러 할인권을 건네주고 쇼핑객들에게 시식을 하게 했다. 두 진열대는 1시간마다 자리를 바꿔놓았다. 진열대가 있는 통로를 지나간 242명 중 40%가 잼 6종류가 놓인 진열대를 방문한 것에 반해 손님 60%는 24가지 잼이 놓인 진열대를 방문했다. 즉 처음에는 잼 종류가 많은 쪽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6가지 잼이 놓인 진열대를 방문한 손님 중 실제로 구입한 사람은 30%였지만, 24가지 잼이 놓인 진열대를 방문한 손님 중 실제로 구입한 사람은 단 3%에 불과했다. 소비자는 다양한 선택 대안이 준비된 쪽에 매력을 느끼지만, 선택 대안이 너무 많으면 결국은 결정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다음 6가지 고급 초콜릿과 30가지 고급 초콜릿으로도 같은 실험을 했다. 이번에는 실험 참가자가 초콜릿 1개를 골라 자유롭게 시식하고 맛에 대해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평가하도록 했다. 6가지 초콜릿 중에서 선택한 사람들이 내린 평가의 평균치는 6.25였는데, 30가지 초콜릿 가운데 선택한 사람들이 내린 평가의 평균치는 5.5였다. 게다가 실험 참가자에게 실험에 참가한 답례로 5달러와 초콜릿 한 상자 중 어느 쪽이든 좋아하는 쪽을 선택하라고 했더니, 6가지 초콜릿 그룹에서는 47%가 초콜릿을 선택한 것에 반해 30가지 초콜릿 그룹에서는 초콜릿을 선택한 사람이 12%에 불과했다.
아이옌거는 이런 실험 결과를 정리하며, 선택자 입장에서는 개인이 파악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선택이 이루어져야 하며, 선택 대안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일종의 후회스러움 또는 실패할지 모른다는 감정에 빠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만족화와 최대화 인간
위의 예처럼 사소한 선택 대안이 아니라,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선택에서는 어떻게 할까?
이런 의문을 품은 슈워츠(Barry Schwartz)와 아이옌거는 대학 4년생의 구직 활동에 대해 조사했다. 결과는 다양한 직업군에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학생일수록 구직 활동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고의’ 업무를 추구하는 학생들이 ‘적당한’ 업무를 추구하는 학생에 견줘 실제로 업무 내용이나 조건이 훨씬 더 좋은 직책이 내정되어 있음에도 만족도가 낮았다. 그런 학생들일수록 낙담, 불안, 욕구불만, 후회 따위 감정이 더 두드러졌다.
또한 아이옌거와 잔은 미국의 퇴직연금제도인 ‘401(k) 플랜’(미국의 확정 기여형 기업연금제도)에서 선택 가능한 펀드가 너무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고용자를 상대로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선택할 수 있는 펀드가 많아지면 401(k) 플랜 그 자체에 참가하는 인원수가 감소해버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슈워츠는 이와 같은 현상을 ‘선택의 패러독스’라 부른다. 현대인에게는 선택 대안이 많을수록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넓어지고 충실도가 더 높아진다는 믿음이 있다. 이 발상은 자유주의 사상과도 연결되어 세상을 석권하고 있지만 이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에게 선택 대안이 많은 것이 행복도를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저하시키고 있다.
슈워츠는 미국의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슈워츠와 워드(A. Ward)는 무엇보다 최고를 추구하는 성향을 지닌 ‘최대화 인간’과 사이먼에서 착상을 얻은 ‘적당히’ 만족하는 ‘만족화 인간’이 있다고 설정하고, 최대화 인간과 만족화 인간의 판정법을 고안하였다.
최대화 인간은 선택 대안이 증가하면 그것을 자세히 검토하고, 더 나은지 아닌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지만, 만족화 인간은 일단 적당한 선택 대안을 발견하면 선택 대안이 증가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따라서 최대화 인간은 선택 결과에 대한 충실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후회하는 경향이 있으며, 대개 행복도를 낮게 평가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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