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제8장 - 타인을 돌아보는 마음
제8장
타인을 돌아보는 마음
사회적 선호
“인간은 대개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다. 하지만 세상 밖에서 살 수는 없다.”
야마모토 슈고로(山本周五郎) 《긴 고개》
“노력해서 자신의 이익을 달성하고 싶다면 우선 타인을 위해야 한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면 자신의 이익은 달성되지 않는다.”
티베트 불교 사캬(Sakya) 학파의 격언
신뢰로 성립된 경제
인터넷에서 현물을 보지 않고도 상품을 구입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쇼핑을 할 때 판매자에게 자신의 신용카드 정보를 흘린 적은 없을까? 통신판매 회사가 지로 용지를 동봉하여 상품을 보내온 경우가 있을 것이다. 상품이 모조품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카드 번호가 부정하게 사용될 염려는 없을까?
최근에는 가까운 장소, 동네, 소규모 기업 등과 같이 서로 잘 아는 사람들 사이의 공동 작업이나 매매 같은 거래 관계는 점차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외국과의 거래, 인터넷 거래 등이 번창함에 따라 잘 알지 못하는 상대와 하는 1회성 거래가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거래 범위와 거래 상대가 확산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신뢰할 만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소비자를 속이는 사람도 있고, 그런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법과 다양한 제도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거래를 일일이 상세한 계약을 주고받을 수는 없고, 계약의 실행 여부에 대한 검증도 쉽지가 않다. 이 때문에 법이나 계약이 미치지 않는 신뢰 관계가 중요하다.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에서는 성실히 일할 것과 노동자가 제공하는 노동에 보답하는 일은 세부적인 사항에 따라 계약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신뢰 관계에 의해 성립되고 있다. 상품의 매매도 그렇다. 상품의 품질이나 배송 조건을 지킬 것, 구입자가 확실히 대금을 지불할 것 등은 계약이 아니라, 신뢰에 의존하는 부분이 크다.
이 같은 신뢰 관계는 원활한 경제활동에 필수 불가결하다. 그래서 애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사실상 모든 상거래에는 신뢰 요소가 포함된다. ……세계경제가 지체되는 원인 대부분은 상호 신뢰의 결여로 설명할 수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거래는 왜 가능한가?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기에 앞서서 다른 사람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고려하고 있는 것일까?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이익도 고려하는 선호를 ‘사회적 선호’라고 한다. 제8장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사회적인 선호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사회적 선호가 사람들의 협력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하는 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 주제를 진행하기 전에 제8장에 자주 등장하는 ‘이타성(利他性)’과 ‘이기성(利己性)’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먼저 정리해두자. 이타성이란 자신의 물질적인 이익 감소라는 비용을 무릅쓰고 타인의 물질적인 이익을 증대시키는 행위나 성질을 말한다. 이기성은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나 성질이며, 경제적 인간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기적인 경제적 인간만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공공재 게임
당신 친구가 커다란 짐을 들고 길을 건너려 하는 노인을 도와주고 있는 모습을 당신이 목격했다고 가정하자. 친구가 왜 그런 친절한 행동을 하는 걸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노인은 친구의 친척일지도 모른다. 친구는 노인이나 목격자인 당신이 자신의 명성을 높여줄 것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친구는 나중에 노인에게 보답을 기대해서 친절을 베푸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모르는 사람을 돕는 일을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여길지도 모른다.
타인의 마음속을 정확히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추측은 단순한 억측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행위에 대한 관찰이나 경험에서 무엇이 참된 이유인지 밝혀내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다양한 실험이 실시된다. 실험을 통해 협력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요인을 조절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중요한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사회적 행동을 확인하기 위해 ‘공공재 게임’이라는 실험 게임이 자주 이용된다. 이 게임에서는 몇 명, 예를 들면 4명으로 그룹을 만들고 각 개인에게 초기 자금으로 1,000원씩 준다. 각 개인은 1,000원 중 얼마를 그룹(공공)을 위해 지출할지 결정한다. 실험자는 각 개인의 기부금을 합하고, 이를 2배 하여 그것을 전원에게 균등하게 배분한다. 만약 모든 구성원이 400원씩 기부했다면 합계 1,600원의 2배인 3,200원을 4명에게 분배하기 때문에 각 개인은 수중에 있는 600원과 분배된 800원을 합한 1,400원을 보유하게 된다.
자신은 한 푼도 기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만 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자신의 기부액은 ‘0’원이고, 나머지 3명이 전액을 기부했다면 자신의 몫은 2,500원이 되기 때문에 이 같은 ‘무임승차’는 매력적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자신은 1,000원 전액을 냈는데 다른 사람이 ‘0’원을 기부했다면, 자신의 몫은 500원뿐이다. 초기 금액보다 적은 액수다. 이런 경우에 자신의 이익이 많아지리라 생각하고 기부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손실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누구라도 무임승차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무임승차하고 나머지 사람이 모두 전액을 기부하게 되면 그룹의 이익금 총액은 7,000원이 된다.
한편, 전원이 전액을 공공을 위해 사용하면 각 개인의 이익은 2,000원이기 때문에 그룹 전체의 이익은 8,000원이 되고, 무임승차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보다 커진다. 전원이 무임승차를 하게 되면, 각 개인의 이익은 초기 금액인 1,000원뿐이다. 공공재 게임은 모두가 힘을 합쳐 일을 하면 커다란 성과를 얻을 수 있지만, 모두가 다른 사람의 노동만을 기대하고 게으름을 피우려는 유혹을 느끼는 상황에서 진행된다.
환경문제, 공유지 사용 문제 등도 같은 구조를 지닌 문제로서 경제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상황이다. 공공재 게임은 잘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제2장)에서 인원수만 늘어난 버전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딜레마’로 불리기도 한다.
공공재 게임에서 경제적 인간은 어떻게 행동할까? 당연히 무임승차다. 전원이 그렇기 때문에 기부금액은 제로이며, 따라서 각 개인의 몫은 초기 금액과 일치하게 된다. 그러면 실제로 이 게임을 실시하면 어떻게 될까? 과연 이 예상은 맞을까?
위태로운 협력 관계
공공재 게임 실험은 수없이 행해져 왔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우선 매회 구성원을 달리하여 10회 반복 시행하기로 한다. 처음에는 평균적으로 초기 보유액의 30~40%를 기부하는 협력 행동이 나타나지만, 협력의 정도는 점차 감소한다. 10회째에는 10% 정도까지 떨어져버린다.
또한 같은 구성원으로 게임을 반복하여 실시하면 처음에는 기부 금액이 약 50%에 달해 높은 협력 행동을 볼 수 있지만, 역시 협력은 점차 감소하고 최종회에서는 15% 정도까지 감소한다.
이 실험 결과를 통해 몇 가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모든 사람이 항상 이기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반대로 완전히 이타적인 사람도 없지만, 간혹 있다고 해도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협력 관계는 방치해두면 붕괴해버리는 약한 관계라는 점을 보여준다. 더욱이 첫 번째 협력 행동만을 보고 사람이 이타적이라든지, 또는 협력이 무너진 결과만을 보고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경솔한 생각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예전에는 경험을 통한 학습으로 협력 행동이 줄어든다는 설명이 가능한 적도 있다. 처음에는 게임 구조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잘못해서 협력하지만, 점차 게임 구조를 학습하기 때문에 기부 금액이 감소해간다는 설명(혼란 가설)이다.
그러나 안드레오니(J. Andreoni)는 이 설명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구성원을 바꾸지 않고 10회 반복하여 게임을 시행했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협력은 점차 감소하였다. 그러다가 그룹을 바꿔 다른 구성원으로 같은 게임을 반복하자, 재차 초기에 기부 금액이 많아졌다가 점차 감소하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협력은 경험에 의한 학습으로 감소한다는 설명은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조건부 협력
공공재 게임에서 행동 패턴을 살펴보자. 피슈바셔(U. Fischbacher)의 실험에서, 참가자의 50%는 타인이 협력한다면 나도 협력하겠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전체의 약 10%는 다른 구성원의 기부금(의 예상치)에 완전히 맞추려는 경향이 있었다. 전체의 40%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것보다 조금 적은 금액을 기부했다. 30%는 완전히 무임승차한 사람들이다. 14%는 전체 기부금의 평균이 초기 보유액의 반이 될 때까지는 구성원에게 맞추지만, 전체 기부금의 평균이 초기 보유액을 초과하면 반대로 기부금을 점점 낮추는 경향이 있었다. 나머지 소수는 매우 무작위한 행동을 취했다. 전체 평균 이상으로 항상 기부하려는 완전히 이타적인 사람은 없었다.
또한 자신 이외의 구성원들의 평균 기부금이 많아지면 각 개인의 기부금도 많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대다수 사람들은 타인이 협력적이라면 자신도 협력하려는 ‘조건부 협력자’였다.
조건부 협력이라고 해도 완전하지 않을 때가 많고, 다른 구성원이 내는 기부금 평균치보다 조금 적은 액수를 기부한다. 이처럼 약한 조건부 협력자와 이기적인 행동을 취하는 사람이 다수일 때, 반복된 실험 결과는 그룹 내의 기부금 평균치가 점점 감소해가는 현상을 보였다. 즉 협력 관계는 점차 쇠퇴하고 마침내 붕괴하는 상황을 상상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처벌의 도입
협력 관계는 어떻게 하면 성립되고, 무엇에 따라 유지되는 것일까? 협력을 촉진하는 제도로서 처벌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일상적인 경험이나 관찰에서도 처벌 제도-반드시 형벌이나 벌금 형식의 처벌뿐 아니라 악평, 따돌림 등도 처벌에 들어간다-가 있으면 처벌을 피하기 위해 협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공공재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처벌을 도입하면 협력 비율이 극적으로 상승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페르와 게비타는 그룹의 다른 구성원을 처벌하는, 즉 다른 사람의 이익을 삭감하도록 룰을 정하고 공공재 게임을 실시하였다. 단, 처벌하는 쪽도 비용이 들게 된다. 예를 들면 처벌로 이익 300원을 줄이기 위해서는 처벌하는 사람도 100원을 비용으로 부담하도록 하는 규정을 정했다. 물론 익명성을 보장하고 구성원이 누구인지는 특정(特定)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이 게임에서는 참가자 4명이 동시에 기부금을 결정한 다음 각 개인의 기부금 정보를 준다. 이 정보에 따라 참가자를 처벌할 수 있다. 페르 등은 이처럼 처벌이 가능한 게임을 그룹 구성원을 고정하여 10회 실시하였다. 그 결과, 1회에서 이미 참가자의 70% 정도가 협력성을 나타냈다. 그러다가 4회 이후부터는 협력성이 90%를 초과한 상태로 유지되었다. 매회 구성원을 교체하여 같은 구성원과는 두 번 같은 조가 되지 않도록 설정한 경우에도 1회에서는 40% 정도의 협력성을 보였고, 점차 상승하여 10회째에는 70% 정도가 되었다.
처벌을 피하겠다는 동기가 협력 행동을 유지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완전한 이기주의자라도 처벌로 자신의 이익이 감소할 것을 두려워하여 협력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처벌의 동기
처벌은 빈번히 실행되었다. 페르와 게비타가 실시한 다른 실험에서는 처벌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로 설정해 각각 6회씩 공공재 게임을 진행했다. 4명이 한 조가 되어 그룹을 구성하고, 구성원은 매번 교체되었다. 처벌을 하려면 처벌자도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84%는 최저 1번은 처벌을 실행했고, 34%는 5회 이상 실행했다. 처벌은 그룹 내의 누가 누구에 대해 실행해도 상관없지만, 처벌된 사람은 비협력자(평균 이하의 기부밖에 하지 않은 사람)가 대부분(75%)이며, 처벌을 행한 자는 협력자(평균 이상을 기부한 사람)가 대부분이었다.
이 실험은 처벌이 없는 게임을 먼저 6회 실행하고, 이어서 처벌이 있는 게임을 6회 실행했다. 그 결과, 처벌이 없을 때는 평균 협력률이 1회 55%에서 6회째는 30%로 점차 감소해갔다. 그러나 처벌이 있을 때에는 평균 협력률은 1회 60%에서 6회째는 85%로 착실히 증가해갔다.
순서를 반대로 하여 처벌이 있는 게임을 먼저 6회 실행하고, 뒤이어 처벌이 없는 게임을 6회 실행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처벌이 있는 경우 쪽이 훨씬 큰 협력성을 나타냈다. 처벌이 협력을 이끌어내고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그때까지 이기적으로 무임승차를 했던 사람이 처벌의 도입에 따라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처벌의 도입에 따라 이익 구조가 바뀌고, 배신보다는 협력하는 쪽이 자신의 이익을 증가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즉 협력해야만 이익 구조가 유리해지기 때문에 이기주의자가 협력을 선택하고, 조건부 협력자는 다른 협력자가 많기 때문에 자신도 협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처벌이라는 행위가 반드시 자신의 이익 증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회 구성원이 교체되고 같은 상대와는 두 번 이상 만나지 않기 때문에 어느 회차에서 처벌을 받은 자가 그 이후 회차에서 기부금을 늘린다고 한다면, 그에 따라 이익을 보는 사람은 처벌을 한 자가 아니라,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기부금을 늘린 사람을 그 후에 만나는 다른 사람이다. 자신의 이익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비용을 걸고 처벌을 감행하는 것이다. 이 같은 처벌은 타인을 보호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타적인 처벌’이라 말하기도 한다.
경제적인 인간은 협력하지 않으며 처벌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타인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인간이라고 한다면, 협력도 처벌도 양쪽 모두 자신의 이익을 증가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벌 기회가 있는 것과 처벌을 실행하는 것이 협력을 위한 포인트가 된다.
구성원이 고정된 공공재 게임에서는 한 번 처벌을 받은 사람은 이후에 협력도가 높아지지만 고정 구성원의 처벌 행위가 반드시 이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처벌한 사람이 향후 자신의 이익을 증가시킬 목적으로 처벌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르 등의 실험에서는 구성원을 고정한 조건에서 피처벌자의 협력 증가와 구성원을 교체하는 조건에서 피처벌자의 협력 증가를 비교할 때 거의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처벌 행동에도 차이는 없었다. 즉 처벌이 자신의 이익 증가와 이어지지 않을 경우에도 처벌은 실행되었다. 처벌은 배신을 억제하는, 즉 협력의 촉진책으로서 실행되기보다 배신 행위에 대한 당연한 보복으로 실행된다는 사회 심리학자의 설명과 일치한다.
그러면 처벌의 비용이 높아지면 처벌은 실행될까? 이 의문에 대해서는 앤더슨(C. M. Anderson)과 퍼터먼(L. Putterman)이 답변한다. 그들의 실험에서는 처벌 비용이 높아지면 처벌이 감소한다는 수요의 법칙에 따른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처럼 처벌은 결코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실행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많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실행하겠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순수하게 이타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사익을 추구하는 측면을 무시할 수도 없다.
제3자에 의한 처벌
공공재 게임에서 처벌의 도입은 협력을 촉진시키지만, 같은 그룹을 이루는 구성원에 의한 처벌이었다. 페르와 피슈바셔는 게임 구성원이 아닌 제3자가 게임 구성원의 행동을 관찰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설정 아래 ‘제3자 처벌 게임’이라는 실험을 실시했다.
게임 조건은 다음과 같다. 즉 구성원 2명이 죄수의 딜레마를 실행하여 협력과 배신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선택한다. 게임은 반복되지 않고 1회만 실시한다. 제3자는 게임자의 선택 결과를 보고 나서 비용을 걸고 게임을 실행하는 자를 처벌할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는 2명만이 하는 공공재 게임이기 때문에 이 게임은 제3자의 처벌을 동반하는 공공재 게임으로 간주할 수 있다.
실험 결과, 죄수의 딜레마에서 배신을 선택한 사람은 약 70%가 처벌을 받았다. 특히 상대가 협력을 선택했는데도 배신을 선택한 사람은 반수 가까이 처벌을 받았다. 이에 비해 쌍방이 배신을 선택한 경우에는 처벌이 20% 정도에 그쳤다.
이 실험 결과도 매우 흥미롭다. 이 게임은 반복 없이 1회 한정 게임이며, 제3자를 포함한 게임자의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제3자가 자기의 이익을 고려하여 처벌을 실행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럼에도 처벌은 실행되었던 것이다. 이때의 제3자 처벌은 매우 이타적인 행위라 말해도 좋다.
처벌과 감정
왜 사람은 처벌이라는 행위를 하는 것일까? 여기서 감정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자. 공공재 게임에서 배신 행위가 협력자에게 분노 같은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런 감정이 처벌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페르 등은 처벌이 있는 공공재 게임을 실험한 다음에 무임승차에 느끼는 분노나 불쾌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나눠 실험 참가자에게 질문했다.
“당신이 16(5) 포인트를 기부했다고 하자. 다른 사람은 14(3) 포인트, 또 다른 사람은 18(7) 포인트를 기부했다. 그런데 한 사람은 2(2) 포인트밖에 기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험 후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난다면 이 사람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을 것인가?” (괄호 안에 있는 숫자는 두 번째 질문에 나오는 포인트)
이 질문을 읽고 분노나 불쾌감의 정도를 가장 약한 레벨1에서부터 최강도인 레벨7까지 7단계로 나누어 평가하게 했다. 그러자 첫 질문에서는 레벨6 이상으로 강한 분노를 느낀 사람이 47%, 레벨5인 분노를 느낀 사람이 37%였다. 괄호 안에 있는 숫자로 두 번째 질문을 했을 때는 레벨6 이상으로 강한 분노를 느낀 사람이 17%, 레벨4나 레벨5인 분노를 느낀 사람이 81%였다. 무임승차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정도는 그 사람의 기부 금액과 그룹 내 다른 사람의 기부 금액 차이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반대로, 자신이 무임승차를 한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분노를 느낀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역시 그룹의 다른 구성원의 차이가 클수록 강한 분노를 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앞의 실험 결과를 보면 그룹의 다른 구성원에 비해 기부 금액이 적을수록 처벌받는 경우가 많았고, 처벌도 엄했다(이익이 크게 좌우한다). 또한 처벌을 도입하면 그것을 두려워하여 기부 금액이 증가했다. 이 결과는 위의 질문 결과와 완전히 일치한다.
따라서 무임승차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처벌 행동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추정된다. 또한 제3자에 의한 처벌은 당사자가 느끼는 분노의 감정과는 조금 다른 감정으로서 일종의 의분(義憤)과 같은 감정에 의한 것이다. 처벌이 감정에 따라 일어난다고 해서 감정적인 처벌이 비합리적이라든지,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처럼 감정이 지닌 의의성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논하겠다.
강한 상호성(Reciprocity)
다른 사람이 협력하기 때문에 나도 협력한다는 ‘조건부 협력’은 종종 ‘양의 상호성’이라 불린다. 타인이 협력한다면 나도 협력하고, 비협력적이라면 나도 협력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또한 비협력적이라면 그에 대해 처벌하는 것을 ‘음의 상호성’이라 한다. 양쪽을 합쳐서 ‘강한 상호성’이라 말하기도 한다. 협력자에게는 협력을, 비협력자에게는 처벌을 하는 행동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협력하지 않으면 나도 협력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선에는 선으로, 악에는 악으로 되돌려준다는 ‘피차일반’ 원리 또는 ‘give and take’와 같은 생각이다.
호혜성이라는 것은 상호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양의 상호성만을 의미하는 단어다. 또한 보복이라든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은 여기서 말하는 음의 상호성 부분만을 가리키는 단어다. 양쪽을 합친 단어로서 가장 적합한 용어는 없지만, 사회학이나 문화인류학에서 사용하는 ‘상호성’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하다.
행동의 의도
사람들의 행동이 타인에게나 사회에서 어떤 판단을 받을지는 그 행동이 초래하는 결과뿐만 아니라 행위자의 의도에도 좌우된다. ‘악의는 없기 때문에 용서하겠다’는 말처럼 말이다.
형법에서는 사람을 죽였다는 결과는 같아도 고의로 그랬다면 살인죄, 실수로 그랬다면 과실치사죄로 구분해 형벌이 크게 달라진다. 이처럼 행동의 결과뿐만 아니라, 의도가 타인의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있다.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게임으로 어빙 피셔 등이 고안한 ‘밤도둑(질) 게임’이 있다. 이 게임에서는 참가자 A(도둑)가 참가자 B(두목)의 명령을 받고 일(도둑질)을 하는 상황을 모방한다. 도둑은 도둑질을 해서 얻은 돈을 모두 자기가 가질 수 있고, 두목에게 바칠 수도 있다. 두목은 도둑의 활동에 대해 보상을 하거나 처벌을 함으로써 상호성을 탐색할 수 있는 게임이다.
게임 참가자는 2명, 게임은 1회만 실행한다. 게임은 2단계로 나뉘어 있고, 참가자 A와 B 모두 초기 금액으로 12포인트씩을 받았다.
우선 참가자 A는 마이너스 6 이상과 플러스 6 이하인 정수를 하나 선택한다. 그것을 $a$라고 하자. $a$가 양수라면 그것의 3배인 $3a$가 B에게 건네진다. A가 벌어들인 금액을 B에게 준다는 의미이다. $a$가 음수라면 $a$포인트(정확히는 $a$의 절대치)를 B한테서 빼앗을 수 있다.
그런 다음에 B는 $a$를 알고 난 다음 마이너스 6 이상 플러스 18 이하인 정수 $b$를 하나 선택한다. $b$가 양수면 B는 $b$를 A에게 준다. 즉 B는 A에게 보상 $b$를 지불하게 된다. 만일 $b$가 음수라면 B는 $b$포인트(정확히는 $b$의 절대치)를 잃고, A는 $b$의 3배인 $3b$를 잃는다. 즉 A는 $3b$를 삭감당하는 처벌을 받는 것이며 $b$는 처벌에 드는 비용이다.
이 게임에서 A는 B에게 포인트를 줄 수도 있고 빼앗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B는 A의 행위에 보상을 주든지 또는 처벌할 수 있다. 즉 B의 양의 상호성과 음의 상호성이 동시에 점검된다는 뜻이다.
포크(A. Falk) 등은 행위자의 의도가 명확히 나타나는 설정으로 밤도둑 게임 실험을 실시하고 상대의 의도를 추측함으로써 사람의 행동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연구했다. 그들은 위와 같은 구조로 설정된 밤도둑 게임을 두 가지 조건에서 실행한 다음 그 결과를 비교했다.
첫째 조건은 A의 의도가 명확해지는 것(의도 조건)으로 A는 임의로 $a$를 선택할 수 있다. 둘째 조건은 $a$값을 주사위를 이용하여 무작위로 결정(무작위 조건)한다. 이 경우 A의 의도는 명확하지 않다.
이 게임에서 만일 B가 사익 추구적 인간이라면 항상 ‘$b=0$’을 선택해서 A에게 보상도 징벌도 하지 않는다. 보상이나 징벌 양쪽 모두 비용이 들고, 게임은 1회밖에 실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가자 B가 사익 추구적인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결과에 얽매여 상대의 의도에는 무관심하다면 양 조건에서 어떤 행위를 하든 차이가 없을 것이다.
만일 B가 A의 의도에만 관심이 있다면, 무작위 조건에서는 A를 처벌도 하지 않고 보상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 조건에서는 $a$가 클 때는 보상을 주고, 작을 때는 처벌을 할 것이다.
실험 결과, B의 행동은 양 조건에서 크게 다른 양상을 보였다. B에게서 A가 보상이나 처벌을 받는 일은 무작위 조건일 때보다 의도 조건일 때 훨씬 많았다. 또한 B 중에서는 의도 조건일 때 이기적으로 행동(‘$b=0$’을 선택)한 사람은 전혀 없었지만, 무작위 조건에서는 30%가 이기적이었다. 즉 많은 사람들이 결과뿐만 아니라 상대방 의도에도 반응한 것이다. 상호성에는 결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반응도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 같은 결과라도 받는 쪽의 해석이 달라지며, 그것이 다른 행동을 일으키게 한다.
매케이브(K. A. McCabe)와 그의 동료들은 조금 다르게 게임을 설정하고, 마찬가지로 의도와 상호성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게임에는 참가자 A와 B 두 명이 참여한다.
우선 참가자 A가 자신과 B에게 ‘20, 20’이라는 배분을 선택할지, 패스하여 B에게 선택을 일임할지를 결정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거기서 게임이 종료된다. 만일 A가 패스하여 B의 순서가 되면 B는 ‘25, 25’라는 평등한 배분을 하든지, ‘15, 30’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배분을 선택하고 게임은 종료된다. 이 게임은 A의 자발적 선택권이 있는 게임과 선택권이 없는 조건의 두 가지로 실험이 실시되었다.
둘째 조건에서는 A에게는 선택권이 없고, B가 ‘25, 25’라는 평등한 배분을 하든지 ‘15, 30’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배분을 선택하고 게임이 종료된다.
결과에 관한 불평등을 회피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가설을 세우면 B의 선택에 따라 생기는 이익 배분은 어느 쪽 조건에서도 같기 때문에 B의 선택에 차이는 없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달랐다. 우선 최초로 A가 선택할 수 있는 조건에서는 37%가 ‘20, 20’을 선택하고, 63%는 패스하여 B에게 결정을 위임했다. 결정을 위임받은 B 가운데 65%는 평등한 배분 ‘25, 25’를 선택하고, 35%가 이기적인 배분 ‘15, 30’을 선택했다. 이에 대해 A에게 선택권이 없고 처음부터 B가 선택하는 조건에서는 평등한 배분을 선택한 것이 33%뿐이었으며, 67%는 이기적인 배분을 선택했다. 양 조건에서 B의 선택은 차이가 명확하다.
그 이유는 A의 의도를 B가 이해했는지에 따라 설명할 수 있다. A가 ‘20, 20’을 포기하고 B에게 선택을 일임한 것은 평등하게 또는 두 사람 모두 이익금이 많아지게 선택 대안 ‘25, 25’를 B가 선택할 것으로 기대했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A는 B를 신뢰한다는 의도가 느껴진다. B는 그 신뢰에 응함으로써 대다수가 ‘25, 25’를 선택했다고 생각된다. 한편, A에게 선택권이 없는 조건에서는 A의 의도 또는 계획과 관계없이 B가 선택할 수 있으므로 ‘15, 30’이라는 이기적인 배분을 많이 선택하게 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세상’이란 참조 그룹
협력이나 처벌이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의 경제적·물질적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대체 사람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 이유 중의 하나로 추정되는 것이 공정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의 특성이다. 무엇을 공정하다고 간주할까?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불평등 회피성이다. 즉 자신과 타인의 이익 차이가 가능한 한 적어지는 것을 더욱 공정하다고 간주하는 사고방식이다. 타인의 이익이 준거점이 되고, 그것과 비교하여 자신의 이익 차이가 크면 불공정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서 타인이란 일반적인 타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연관성이 깊은 주변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지역 사회나 근무처, 학교 등의 동료, 친구, 지인 등을 말한다. 이 같은 사람들을 ‘준거점 그룹’이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경우는 그 사람이 이 같은 준거점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며 그 밖의 타인은 아무래도 좋다.
주변 사람이 차를 새로 바꾼 것을 알면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들지만, 유명인이 별장이나 고급 외제차를 가지고 있는 것을 TV에서 본다면 호기심은 나겠지만 질투심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234쪽에 인용한 야마모토 슈고로나 제5장 첫 부분에 인용한 수필가 해즐릿이 쓴 문장 중에 있는 ‘세상’이란 바로 이 같은 참조 그룹을 말한다.
그러면 처벌 역시 불평등을 회피하려는 동기에 기초를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포크 등은 처벌 비용 1단계로 피처벌자의 이익 한 단위가 공제되는 설정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이 설정에서 처벌은 이익 격차를 시정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처벌은 빈번히 행해졌다.
역시 그들은 이 같은 처벌 조건에서 구성원을 고정한 게임 실험과 매회 구성원을 교체하는 게임 실험을 실시했는데, 양쪽에서 처벌 행동에는 거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불평등 회피성으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처벌 행동이 나타난 것이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결과뿐만 아니라 행위자의 의도도 공정한 판단을 내릴 때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의도가 없는 경우에도 처벌은 발생했다. 즉 결과에 대해서도 반응한다. 이처럼 상호성은 결과와 의도 양쪽의 공정성에 대한 판단에서 성립된다고 생각된다.
평판 형성과 간접적인 상호성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면 도움을 받은 당사자가 아니라 그 외 다른 사람에게서 선의(善意)가 되돌아올 때가 있다. 훌륭한 행동을 했다는 평판이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당사자 외 제3자와 맺는 상호적인 관계를 간접적인 상호성이라 하고, 선의를 베푼 상대방한테서 답례가 돌아오는 것은 직접적인 상호성이라 할 수 있다.
간접적인 상호성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훌륭한 일을 한다는 사실을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평판이나 명성이 중요해진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이 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남에게 인정을 베풀면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속담이 있다. 최근 이 속담을 ‘정을 베푸는 것은 남을 위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베풀지 않는 게 좋다’는 말로 이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사족이지만 타인에게 선행을 하면 돌고 돌아서 자신에게 좋은 일이 되어 되돌아온다는 의미이며, 이것이 바로 간접적 상호성이다.
인정을 베풀면 반드시 돌아온다
간접적인 상호성이 협력 행동을 추진하고 유지하는 강한 동력이 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베데킨트(C. Wedekind)와 밀린스키(M. Milinski)는 간접적인 상호성 게임을 고안했다.
참가자 중 한쪽이 제공자, 다른 쪽이 수령자 역할을 맡고, 제공자는 일정한 초기 금액을 받는다. 제공자는 초기 금액 중 미리 정해진 일정액을 수령자에게 기부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기부액은, 예를 들면 2배로 수령자에게 건네진다.
한 그룹은 여러 명으로 되어 있고, 구성원은 제공자와 수령자 역할을 무작위로 할당받는다. 게임은 여러 번(예를 들면 20회) 반복되지만, 같은 상대와는 다시 한 조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 기부를 받았다고 해서 돌려주는 직접적인 ‘반환’은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간접적인 상호성 게임의 특징은 참가자가 과거에 어떤 결정을 했는지가 공개된다는 점이다. 모든 참가자는 실명을 밝히지 않고 가명을 쓰고 있으며, 게임에서 어떤 가명을 쓰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 그 이력을 전원이 알 수 있다. 즉 기부라는 관대한 행위를 해온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지가 전원에게 알려져 있고, 평판(명성)이 형성된다.
이 게임을 실제로 실행하면 50~90%의 협력률(기부한다)을 얻을 수 있지만, 이전에 기부를 해왔던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기부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친절한 사람은 자신이 친절하게 대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한테서 친절하게 대접받는다. 이는 바로 ‘남에게 인정을 베풀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밀린스키 등의 실험에서는 기부자가 다른 사람에게 기부했는지 여부가 공개되고, 게다가 복지 단체인 유니세프에 기부할지 말지를 묻는 질문도 받는다(실험이 끝나고 실제로 기부했다). 마지막으로 학생회 대표를 결정하는(가상적) 선거를 했다. 기부 액수가 많을수록 다른 사람에게서 기부를 받은 경우도 많고, 기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득표수가 많다는 상관관계를 알 수 있었다. 좋은 행동을 취하면 좋은 평판이 형성되고, 그것이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입지도 좋게 만드는 것이다.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알렉산더(Richard Alexander)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많은 상호성을 포함한 복잡한 사회 시스템에서는 상호적인 관계에서 매력적이라고 판단되는 것이 성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다.”
간접적인 상호성 게임과 공공재 게임
밀린스키 등은 실험을 더 심화하였다. 실험 참가자는 6명을 고정 멤버로 하여 10개 그룹을 만들었고, 모두 초기 보유 금액으로 20마르크를 받았다.
이 실험은 각 그룹이 간접적인 상호성 게임과 공공재 게임을 교대로 함께 20회 실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간접적 상호성 게임에서는 기부자가 2.5마르크를 기부할지 여부를 결정하고, 수령자는 4마르크를 수령한다. 공공재 게임에서는 일정액(2.5마르크)의 기부 여부에 대한 결정만 내린다. 기부 총액은 2배를 곱해 6명에게 분배된다.
우선 간접적 상호성 게임, 다음에 공공재 게임의 순으로 양 게임을 교대로 16회까지 시행하되, 마지막 4회는 공공재 게임만 실시한다. 또한 실험은 두 가지 설정으로 나뉘어 5개 그룹에게는 17회째 이후는 공공재 게임만을 실시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려주지만[기지 조건(旣知條件)], 나머지 5개 그룹에게는 알려주지 않는다[미지 조건(未知條件)]. 중요한 것은 간접적 상호성 게임을 할 때는 참가자들이 두 가지 게임을 하면서 그때까지 어떻게 행동했는지, 즉 기부에 대한 모든 이력이 공개된다는 점이다. 물론 멤버의 익명성은 보장한다.
이 실험 결과 16회째까지의 모든 공공재 게임에서 90% 이상의 협력(기부한다)이 달성되었다. 17회째 이후는 나머지 모두가 공공재 게임인 것을 알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기지 조건 그룹에서는 회를 더할 때마다 협력률은 점점 저하됐고, 20회째에는 겨우 40%가 되었다. 한편 미지 조건 그룹에서는 협력률은 떨어지긴 했지만, 그 크기는 미미했다. 또한 직전 공공재 게임에서 협력을 거부한 사람은 다음의 간접적 상호성 게임에서는 60%의 확률로 기부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공공재 게임에서 기부를 하면, 간접적 상호성 게임에서 거부될 확률이 20% 정도였다.
이 결과의 의미는 이해하기 쉽다. 공공재 게임에서 기부를 하지 않으면 간접적 상호성 게임에서 그 정보가 공개되어 기부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악평이 나면 이익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협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4회에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공공재 게임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룹과 모르는 그룹의 협력 행동 차이에서 명료하게 나타난다. 기지 조건 그룹에서는 자신의 평판에 더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협력률은 현저히 저하되지만, 미지 조건 그룹에서는 재차 간접적 상호성 게임이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명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평판 형성이 협력 행동을 강력하게 촉진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처벌이라고 생각된다. 이 경우에 기부하지 않는다는 처벌에는 비용이 들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더 한층 효과적이다. 앞에서 서술한 공공재 게임에서 처벌해야 하는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처벌을 실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처벌할 것을 기대하는 ‘처벌의 무임승차’라는 이차적인 무임승차 문제가 수반된다. 그러나 간접적 상호성에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다.
평판 형성 자체는 이타심이나 공정성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평판이 이익 증가로 연결되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이기적인 행위일 뿐이다.
경제적 인간과 호혜적 인간의 상호 작용
강한 상호성이 동기로 작용해 행동하는 사람을 ‘호혜적 인간(Homo Reciprocans)’이라 부른다고 하자. 여기서는 사람이 경제적 인간인가 호혜적 인간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 경제적 인간과 호혜적 인간 두 부류가 있다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공공재 게임에서 살펴보았듯이 실험에서 경제적 인간과 호혜적 인간, 그리고 성향이 또 다른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처벌이라는 제도가 있으면 호혜적 인간이 경제적 인간에게 협력 행동을 하도록 이끌 수 있다.
최근 카머러와 페르는, 인간을 이와 같이 두 가지 성향으로 나눴을 때 그들의 상호 작용에 따라, 그리고 그 시기의 경제 제도에 따라서는, 경제적 인간 타입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기존 경제학 모델로 전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다음 예를 생각해보자. A와 B 두 사람에게 각각 재산이 있지만 서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의 가치는 10, 상대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가치는 20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가정하자. 서로 재산을 교환하면 양쪽 모두 만족도는 커진다.
지금 두 사람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직접 교환은 할 수 없고, 교환하기 위해서는 발송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법적 구속력을 지닌 엄밀한 거래 계약을 작성할 수도 없다고 한다. 이 상태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구조다. 여기서 양쪽 모두 경제적 인간이라면 두 사람 모두 발송하지 않을 것이다. 즉 만족을 높일 기회를 두 사람 모두 놓쳐버린다. 양쪽 모두 호혜적 인간이며 서로 그것을 알고 있거나 그렇게 믿고 있다면, 교환은 순조롭게 성립되고 양쪽 모두 만족도를 높인다.
그러면 B가 호혜적 인간이고 A가 경제적 인간이며, 서로 그것을 알고 있다고 하자. 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동시에 시행하면 B는 A가 경제적 인간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발송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인간인 A도 물론 발송하지 않으므로 거래는 성립되지 않는다. 경제적 인간 A의 존재가 호혜적 인간 B에게 비협력적인 행동을 취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실험의 조건을 바꾸어 시행하면 상황이 바뀐다. A는 B가 호혜적 인간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발송한다. 그 후 B는 물론 발송한다. 교환이 성립되고 양쪽 모두 만족한다. A가 발송을 한 것은 사익을 위해서지만, 이 경우에는 호혜적 인간 B의 존재가 경제적 인간 A에게 발송이라는 협력 행동을 취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A도 B도 경제적 인간이지만 서로 상대가 호혜적 인간이라 믿는 이유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위와 마찬가지로 교대로 죄수의 딜레마를 10회 진행하도록 한다.
A는 상대가 호혜적 인간일 확률 $r$이 0.5보다 크다고 믿고 있으면, 마지막 회차에서라도 협력하는 것(발송)이 이익을 높이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r \times 20 + (1 - r) \times 0 > 10$
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1 - r) \times 0$’은 상대가 경제적 인간일 확률($1-r$)에 재산을 받아들일 수 없음의 가치 ‘0’을 건 것이다. 경제적 인간 B는 마지막 회차를 제외하곤 재산을 발송한다. 도중에 발송을 멈추면 자신이 경제적 인간인 것을 A에게 알려주게 되고, 그 후의 협력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이익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적 인간이라도 단순히 상대가 호혜적 인간이라고 믿고 있으면 협력적인 관계가 구축된다. 호혜적 인간이라고 믿기 위해서는 호혜적 인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경제적 인간만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는 이런 결론은 이끌어낼 수 없다.
이상의 예는 제도나 조직의 형태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호혜적 인간의 존재가 경제적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거나, 경제적 인간이 호혜적 인간을 경제적 인간처럼 행동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경제적 인간의 존재만을 전제로 하는 주류 경제학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처벌의 역효과
처벌이 매우 유효하게 협력을 촉진하는 것을 살펴보았지만, 여기서는 반대로 처벌이 협력을 억제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에 대해 알아보자.
공공재 게임이나 죄수의 딜레마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상황에서 협력 관계를 실험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게임으로 신뢰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자면 신뢰 게임은 이렇게 진행된다. 참가자 A가 초기 보유액 1,000원을 가지고, 그중에서 얼마를 B에게 건넬지 결정한다. 금액이 400원이었다고 하자. 실험자는 그 금액을 3배 하여 참가자 B에게 건넨다. 참가자 B는 건네받은 금액 1,200원 중 주고 싶은 만큼 A에게 돌려주는 게임이다.
참가자 A는 B를 신뢰한다. 참가자 B는 신뢰를 받는, 또는 신뢰에 응하는 처지여서 이 게임을 신뢰 게임이라 부른다. A가 B를 신뢰하여 투자를 결정하고, B는 투자한 금액의 성과금 중에서 얼마를 A에게 반환하는 관계를 모방한 게임이다. 참가자 A의 이익은 ‘(초기 보유액)-(투자액)+(B에게 돌려받는 반환금)’이 되고, B의 이익은 ‘(A가 투자한 돈의 3배)-(반환금)’이다.
이때 양쪽 모두 경제적 인간이라면 이 게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명백하다. 참가자 B는 A에게 돈을 전혀 반환하지 않을 것이다. 전액을 자신이 가져가버릴 것이다. 참가자 A는 이를 예측하고 있기 때문에 최초의 투자액은 0원이다. 따라서 이전(移轉)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이익은 A가 1,000원, B가 0원이 되어 게임은 종료된다.
필자의 실험에서는 A는 평균 초기 금액의 53%를 투자하고, B는 받은 금액의 30~40%를 돌려주었다.
페르와 로켄바흐(B. Rockenbach)는 신뢰 게임에 처벌 기회를 도입한 실험을 실시해 처벌이 협력을 억제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처벌할 기회가 있는 조건과 없는 조건에서 신뢰 게임 실험을 1회 실시했다. 처벌 기회가 없는 신뢰 게임은 통상의 신뢰 게임과 마찬가지다. 처벌 기회가 있는 조건에서는 참가자 A는 투자를 함과 동시에 B로부터 얼마를 돌려받고 싶은지 요구한다. 이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에는 A는 B의 이익 중 일정액을 삭감하는 처벌을 할 수 있는데, A는 이 처벌을 발동할지 말지도 동시에 선언하는 것이다. 어느 쪽 조건에서도 B가 얼마를 되돌려줄지는 B가 정한다.
어느 쪽 조건에서도 A의 투자액이 커질수록 B의 반환금도 커진다는 상호적인 행동을 볼 수 있었다. 단 이 실험은 1회 한정이기 때문에 이 행동은 장래의 이익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순수하게 신뢰하고 신뢰에 응한다는 상호성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흥미로운 것은 조건의 차이에 따른 참가자의 행동 차이다. 참가자 A의 투자액도 B가 A에게 건넨 반환액도 가장 커졌을 때는 처벌이 가능하면서 그것을 발동하지 않을 때였다. 액수가 가장 적었던 때는 처벌을 실제로 행한다고 선언했을 때였다.
처벌이 없는 조건에서는 액수가 양쪽의 중간 정도였다. 또한 A가 처벌 가능한데도 자중했을 경우에는 B 역할을 맡은 사람 가운데 반환금을 한 푼도 돌려주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처벌을 가했을 경우에는 B 가운데 33%는 반환금으로 0원을 선택했다.
평균 반환금은 후자에서는 전자의 절반 이하였다. 최종 참가자 A의 이익도 B의 이익도 처벌 가능하지만 발동하지 않았을 때가 가장 많았으며, 처벌 없는 조건에서가 그다음으로 많았고, 처벌 발동을 한 경우가 가장 적었다.
즉 처벌이 가능하지만 그 기회를 포기하는 경우에 신뢰 관계가 형성되고, 신뢰에 응하려는 참가자 B의 반응을 이끌어냈으나, 처벌은 신뢰 관계를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공공재 게임에서는 처벌이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유력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신뢰 게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차이점은 왜 발생하는 것인가? 공공재 게임에서 무임승차한 자는 처벌에 따라 자기 이익이 감소할 것을 두려워하여 협력적인 태도가 되고, 무임승차한 자를 처벌하는 일은 윤리에 맞는 이타적인 행위로 간주된다. 그러나 신뢰 게임에서는 처벌의 실행은 참가자 A가 자신의 이익을 늘리려는 이기적이고 불공정한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참가자 B는 비협력적이 된다. 반대로 처벌 기회가 있으면서 실행하지 않는 것은 관대하고 공정한 행위가 되어 B가 협력적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처벌로 저하되는 윤리
그니지(U. Gneezy)와 러스티치니(A. Rustichini)는 처벌과 윤리 관계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실시했다. 아이를 맡아 돌보는 데이케어(day care) 센터에서는 약속 시간에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오게 되어 있지만 지각하는 부모도 가끔 볼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데이케어 센터 몇 군데를 골라 지각하는 부모에게 지각 시각에 따라 벌금을 약간 부과하도록 했다.
통상적인 예측으로는 지각은 감소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실시된 후에 오히려 지각하는 부모가 증가하였다. 이 실험은 20주 동안 실시되었고, 4주가 경과한 후에 벌금제가 도입되었다. 그러자 6주 후에 지각하는 부모가 증가하기 시작하더니, 7주 이후에는 지각하는 부모가 벌금제 도입 이전의 2배가 되었다. 16주 후에 다시 벌금을 부과하지 않게 되었지만 지각은 높은 수준인 채 그대로였다.
그니지와 러스티치니는 벌금이 없을 때는 부모가 지각하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꼈고, 그 감정이 지각을 예방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벌금제가 도입된 후에는 ‘시간을 돈으로 사겠다’는 거래의 일종으로 여기게 됨으로써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지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닌가 하고 설명한다.
벌금 부과를 중지한 후에도 지각이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은 단순히 벌금이 제로가 되었을 뿐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즉 제재 시스템이 도입됨으로써 사회규범이나 윤리에 따라 규제되던 행동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처럼 느끼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가 이 점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벌하는 것이 도덕심을 약화시켜버린다. 그 의미는 벌하는 것으로 죄의 대가는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벌은 죄에 대한 공포심을 형벌에 대한 공포심으로 떨어뜨린다. 요컨대 죄를 허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벌금은 죄를 거래할 수 있는, 계량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꿔버린다. 값을 깎는 일도 가능하다.”
공공재 게임에서 처벌 도입으로 협력이 증가한 것은 순수한 사익 추구가 동기다. 즉 이익이 바뀜으로써 협력이 유도되었다. 그 배후에 있는 것은 역시 강한 상호성이다. 협력에는 협력을, 배신에는 처벌을 돌려줌으로써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 또한 신뢰 게임에서 처벌이 오히려 협력을 감소시킨 것도 마찬가지로 상호성 때문이다. 처벌이 가능함에도 발동하지 않은 것은 선의의 행위며, 그에 대해 선의를 품고 되돌려주는 것이다. 처벌을 하겠다는 협박은 악의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악의로 돌려주는 것이다.
참가자 A의 요구는 이기적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처벌된 것이다. 또한 데이케어 센터에서 매기는 벌금이 지각을 증가시킨 것은 사회규범을 시장 거래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개인 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에 상호성과는 관계가 없다.
이상의 사례에서 처벌이라는 수단 하나에도 다양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경제적 인간만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는 결코 이끌어낼 수 없다.
최종 제안 게임
58쪽에서 소개한 최종 제안 게임은 최후통첩 게임이라고도 하는데, 간소하지만 사람들의 사회적인 선호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풍부한 실험 게임이다. 복습한다는 기분으로 다시 살펴보자. 이 게임에서는 참가자 2명(제안자와 응답자)이 필요하다. 제안자는 초기 금액(예를 들면 1,000원) 중 얼마(예를 들면 300원)를 응답자에게 건네준다는 제안을 한다. 그다음 응답자는 그 제안을 수락할지 거부할지를 결정한다.
수락한다면 제안대로 분배되고, 이익은 제안자가 700원이고 응답자는 300원으로 게임은 종료된다. 응답자가 제안을 거부했을 경우에는 양쪽 모두 이익은 제로인 채 게임이 종료된다. 양쪽 모두 경제적 인간이었다고 가정한다면 응답자는 1원을 제안받았다 하더라도 0원보다는 낫기 때문에 수락해야 한다. 제안자는 이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1원을 준다는 제안을 한다. 따라서 이익은 제안자가 999원, 응답자는 1원을 가질 것이다.
이 게임은 간단하고 실험하기가 쉽기 때문에 실제로 다양한 설정으로 실험이 실행되고 있다. 많은 실험 결과에서 공통된 사항은 제안자의 평균적인 제안액은 45% 전후(필자가 학생을 대상으로 실행한 실험에서는 48%)이며, 최대치는 50%다. 또한 30% 이하를 제안한 것 중 반 정도는 응답자가 거부했다(필자의 실험에서도 동일). 3개월 치 월급을 초기 금액으로 한 실험이 실시된 적도 있었는데 결과에 큰 차이점은 없었다.
유일한 예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힐(E. L. Hill)과 샐리(D. Sally)가 자폐증 환자를 실험 참가자로 정해 시행한 최종 제안 게임 실험이다. 제안자가 된 자폐증 환자 중 대략 3분의 1은 0원을 제안했다. 자폐증 환자는 타인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하는 특징이 있고, 응답자가 거부할지 말지를 대부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얄궂게도 이것이 경제적 인간의 행동 예측에 가장 잘 합치되는 예다.
제안과 거부의 동기
최종 제안 게임 실험에서 제안자와 응답자의 행동은 어떤 동기를 따르는 것일까? 제안자의 행동 동기 중 하나는 공정성에 대한 선호다. 대략 반반이라는 제안이 공정한 사고방식과 합치되기 때문에 공정함을 추구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이익 최대화 행동에 대해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제안자는 응답자가 거부하지 않으면, 즉 (제안자가) 예측할 수 있는 최저 금액을 제시한다고 생각하면 게임 이론에서 말하는 최적 반응으로서 매우 합리적인 행동으로 여겨진다.
로스(A. E. Roth) 등은 학생인 실험 참가자의 거부 행동으로부터 제안액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지 기대치를 구하고, 거기에서 거부되지 않을 최저 금액을 추정했다. 예를 들어 1,000원 중 300원을 제안했을 때 25% 승인되었다고 하면, 이 제안에 따른 이익의 기대치는 175원($700원 \times 0.25$)이다. 그리고 실제로 제안 행동은 거의 기대 이익을 최대화하도록 이뤄지는 것을 발견했다.
한편 응답자의 행동은 어떨까? 응답자는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는 낮은 금액을 제안받으면 거부한다. 이 행동은 불공정한 제안자에 대해서는 비용이 들더라도 처벌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응답자의 이런 태도는 경제적인 사익 추구라고는 생각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이 사익을 얻을 수도 없기 때문에 이타적인 처벌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제안자의 불공정한 제안에 대한 분노, 또는 제안자만이 많은 이익을 얻는 것에 대한 질투라는 감정을 고려해보면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샤오(E. Xiao)와 하우저(D. Houser)는 응답자가 제안자에 대해 자신의 기분(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있다는 설정으로 최종 제안 게임 실험을 실시하고, 그 기회가 없을 경우와 비교하였다.
응답자는 제안을 받은 후에 거부와 수락을 선택할 뿐만 아니라 제안자에 대한 감정을 기술하여 제안자에게 알릴 수 있도록 했다. 이 실험 결과, 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있는 경우가 없는 경우보다 불공정한 제안을 거부하는 비율이 줄어들었다.
즉 제안을 거부하는 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며, 글로 써서 표현함으로써 부분적으로 감정의 대체가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면 불만을 표출함으로써 불공정성에 대한 분노가 다소 줄어들고, 그 때문에 거부가 줄었다고 할 수 있다. 응답자의 태도는 감정에 따라 결정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경제적인 이익은 증가하지 않는데도 직접 상대에게 항의하거나 불만을 토로함으로써 만족하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최종 제안 게임과 의도
최종 제안 게임에서도 신뢰 게임과 마찬가지로 제안자의 의도가 응답자의 거부 행동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크 등은 제안자의 의도를 응답자가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미니 최종 제안 게임 실험을 실시했다.
제안자는 자신과 응답자에 대해, 예를 들면 ‘8:2’라는 자신에게 유리한 배분이나, ‘5:5’라는 공정한 배분 중 한쪽을 제안한다. 제안자의 선택 대안은 이 두 가지밖에 없다. 응답자가 수락하면 제안은 실행되고, 거부하면 양쪽 모두 이익은 제로인 것은 다른 실험과 마찬가지다. 포크 등은 이밖에도 ‘8:2’와 ‘2:8’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분배, ‘8:2’와 ‘8:2’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분배, ‘8:2’와 ‘10:0’이라는 제안자에게 아주 유리한 분배로 합계 네 가지에 대해 응답자의 행동을 조사했다.
‘8:2’는 선택별로 공통으로 있기 때문에 상대가 되는 배분을 지정하여 분류하도록 한다. 예를 들면 두 가지 배분 ‘8:2’와 ‘2:8’ 중에서 선택하도록 제안하는 게임을 ‘2:8’ 게임, ‘8:2’와 ‘5:5’ 중에서 선택하도록 제안하는 게임을 ‘5:5’ 게임 등으로 부르기로 한다.
‘8:2’라는, 제안자에게 유리한 배분은 상대 분배 조합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5:5’ 게임에서 ‘8:2’는 불공정하다는 의미가 될 것이며, ‘2:8’ 게임에서 ‘8:2’는 제안자의 선택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질 것이다. ‘8:2’ 게임(두 가지 선택이 모두 ‘8:2’인 게임: 역주)에서는 불공정하지만 다른 것을 선택할 여지가 없다. ‘10:0’ 게임에서는 ‘8:2’가 불공정하지만 다른 선택보다 좋은 것임을 의미할 것이다.
실험 결과 ‘8:2’라는 제안을 거부할 확률은, ‘5:5’ 게임에서는 44%, ‘2:8’ 게임에서는 27%, ‘8:2’ 게임에서는 18%, ‘10:0’ 게임에서는 9%였다. 각 게임에서 ‘8:2’가 지닌 의미가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8:2’ 게임에서 제안별 성립된 비율과 그때의 ‘8:2’의 기대치, 다른 편 배분의 기대치는 각각 아래에 있는 표와 같다.
| 거부율 | ‘8:2’ 기대치 | 다른 배분 기대치 | |
|---|---|---|---|
| ‘5:5’ 게임 | 31% | 4.44 | 5.00 |
| ‘2:8’ 게임 | 73% | 5.87 | 1.96 |
| ‘10:0’ 게임 | 100% | 7.29 | 1.11 |
제안자도 응답자의 마음을 잘 짐작하여 거부될 가능성이 적고 또한 기대 이익이 커지는 제안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실험에서는 ‘8:2’라는 배분 결과뿐만 아니라 제안자가 다른 선택 대안이 있는데도 ‘8:2’를 제안했다는 사실에서 나타나는 제안자의 의도에 응답자가 반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도뿐만 아니라 다른 선택 대안이 없는 ‘8:2’ 게임에서도 18%는 거부되었기 때문에 응답자는 결과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의 공정성과 의도의 공정성 양쪽이 응답자의 태도를 결정하는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블라운트(S. Blount)의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해 낮은 금액을 제안(응답자는 컴퓨터를 이용한 제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하면 사람이 제안할 때보다 거부율이 상당히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컴퓨터의 제안에는 의도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거부할 마음이 줄어든 것이다.
경쟁하에서의 거래
카머러와 페르는 호혜적 인간과 경제적 인간의 상호 작용이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최종 제안 게임을 이용하여 살펴봤다.
최종 제안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을 어떤 상품의 판매자와 구매자라고 하자.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그 상품을 가격 $p$에 팔도록 제안한다.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구매자는 그 상품 가치를 100으로, 판매자는 제로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구매자는 단 1회밖에 판매자에게 제안할 수 없다. 판매자가 가격 $p$를 수락한 경우에 거래는 성립된다. 판매자가 경제적 인간이라면 ‘$p=1$’일지라도 거래를 수락할 것이다. 여기서 구매자도 경제적 인간이라면 1을 제안하고 거래는 성립될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런 경우는 실험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 예다.
여기서 판매자 측에 약간의 경쟁 요소를 도입하여 재화의 판매자가 두 사람이라 가정하자. 구매자는 재차 가격을 제안하지만 이번에는 판매자 중 한 사람이라도 수락하면 거래가 성립되고, 두 판매자가 모두 거부하면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 같은 설정에서 실험을 하면 거의 모든 경우에 구매자의 제안 가격도, 판매자가 수락하여 성립하는 가격도 모두 저하된다.
피셔 등이 실험한 바로는, 가치가 100인 재화를 판매하는 판매자가 한 사람일 때 거래 가격은 40~50이었던 것이 판매자가 두 사람이 되면 10~25로 확연히 감소하고, 다섯 사람이 되면 5~10으로까지 떨어져버린다.
이 같은 현상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사람이 공정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고, 호혜적 인간만이 존재할 경우에도 설명할 수 없다. 역시 호혜적 인간과 경제적 인간의 쌍방이 있다는 전제라야 설명이 들어맞는다.
역시 앞에서 설명했듯이 호혜적 인간은 불공정한 결과나 의도에 기초하여 처벌을 실행한다. 그러나 경제적 인간과 호혜적 인간이 혼재할 경우, 경쟁이 있으면 처벌이라는 행동이 의미를 잃게 될 염려가 있다.
합리적인 호혜적 인간은 판매자 중에 경제적 인간이 있고 어떤 가격이라도 수락할 확률이 제로가 아닌 것을 알고 있다. 또한 판매자 수가 증가하면 가격을 수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만일 호혜적인 판매자의 경쟁 판매자가 경제적 인간이고 낮은 금액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호혜적인 판매자는 불공정한 제안을 거부하는 처벌을 구매자에게 줄 기회를 잃게 된다.
여기서 거부 자체의 의미는 상실되고 호혜적인 판매자 역시 낮은 제안 금액을 받아들이게 된다. 즉 경제적 인간의 존재가 호혜적 인간을 경제적 인간처럼 행동하도록 만들게 된 것이다.
문화로 달라지는 행동 경향
이전에 행해진 최종 제안 게임 실험에서는 실험 참가자가 대부분 경제 선진국의 학생이어서 위에서 서술했듯이 전형적인 결과가 도출되고 나라에 따른 차이는 거의 없다. 그러면 더욱 다양한 민족이나 문화의 차이, 또는 사회의 차이에 따라 사람들의 사회적인 선호는 달라질까?
다양한 지역에 사는 수많은 민족을 대상으로 최종 제안 게임을 실험하기 위해, 조셉 헨리치(J. Henrich)와 같은 인류학자, 로버트 보이드(Robert Boyd)를 비롯한 진화생물학자, 카머러와 페르를 포함한 행동경제학자 등 모두 17명으로 연구 그룹을 꾸려, 민족지적(民族誌的) 조사를 대규모로 실행했다.
그들은 4대륙 12개국에 걸친 15개 소규모 부족을 조사했으며, 생활 방식은 수렵 채집, 화전 농업, 방목, 소규모 농업 등이다. 구체적으로 화전 농업을 주로 하는 마치겐가족(Machiguenga), 아추아족, 케추아족(페루), 치마네족(Tsimane, 볼리비아), 아체족(파라과이), 수렵 채집민인 하드자족(Hadza, 탄자니아), 아우족(Au), 그나우족(Gnau, 파푸아뉴기니), 라마레라족(인도네시아), 유목민인 토르구트족(Torgut), 카자흐족(Kazakh, 몽골) 등이다.
흥미롭게도 제안액이나 수락·거부 형태가 선진국 학생을 실험 참가자로 한 실험 결과와 큰 차이를 보였다. 집단별 제안액 평균치는 25~57%로 차이가 많았다. 거부에 관해서는 더 큰 차이점이 있다. 아우족과 그나우족의 경우, 50% 이상의 ‘아주 공정한’ 제안이 거부되었다. 다른 4개 집단에서는 어떤 제안이라도 거부는 없었다. 그중 아체족의 평균 제안액은 50%였기 때문에 거부되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만, 치마네족과 케추아족의 제안 중에는 절반이 30% 이하였지만 모두 수락되었다.
앞에서 제안자의 행동이나, 응답자의 행동을 어떤 의미에서는 합리적이라고 서술했지만 소수민족 중에는 그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패턴이 나타났다. 앞서 말한 4개 집단의 예에서는 거부를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부되지 않는 최저액’을 특정할 수 없다. 또한 아우족과 그나우족에서는 공정한 제안이 거부되는 행동도 나타났고, 라마레라족의 제안액은 평균 57%로 올라가 합리적인 이익 최대화에서 빗나가 있다.
이처럼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제안이나 거부 패턴이 모두 선진국과 큰 차이가 있었다. 이에 따라 헨리치 등은 소수민족 집단의 경제적·사회적인 환경과 제안액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계속 연구했다. 연구 결과, 가족을 기본단위로 생산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협력하는 정도가 클수록 최종 제안 게임에서 제안하는 금액도 크다는 점, 즉 사회적 협력이 중요한 집단일수록 제안액도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욱이 시장에서 판매가 일상적으로 행해질수록 제안액이 커지는 것도 판명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적·사회적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생활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집단일수록 제안액도 커지고 더욱 공정하고 협력적인 태도를 보여주게 된다.
다만 이런 상관관계가 어떤 인과관계를 의미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즉 생활 속에서 협력 행동이나 시장에서 거래해본 경험으로 인해 협력적인 태도를 몸에 익혔고, 그 결과 최종 제안 게임에서 제안액이 커지는 것인지, 또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원래부터 협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협력 체제가 잘 진행되어 시장 거래가 활발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최종 제안 게임에서 제안액이 커지는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들 사회에서는 선물을 줌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 하는 관습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선물을 받는 일은 장래에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강한 의무를 지는 일을 의미하고 있었다. 또한 답례를 하지 않고 부채로 남으면 수취자의 지위가 떨어지게 된다.
라마레라족을 대상으로 한 최종 제안 게임에서는 평균 제안액이 57%에 달했다. 라마레라족은 고래잡이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데, 포획된 고래는 우선 실제로 고래잡이에 참가한 사람들이나 배를 만든 사람들에게 분배되지만 포획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분배되는 관대한 관습이 있다.
이같이 일상생활의 관습이나 규범이 다르면, 즉 문화의 차이가 최종 제안 게임에서 다양한 행동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런 대규모 실험으로 밝혀진 사실 중 하나는 경제적 인간의 가설이 들어맞을 법한 행동을 취한 집단은 전무했다는 사실이다. 역시 연령, 성별, 개인의 재산 등 개인적인 속성과 제안·거부 행동의 관련성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경제학을 배우면 이기적이 된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을 배우면 이기적이 된다’는 쇼킹한 보고를 소개하겠다. 이를 최초로 밝힌 사람은 마웰(G. Marwell)과 에임스(R. Ames)이며, 그 후 프랭크 등이 재확인했다.
마웰과 에임스는 경제학 전공자와 기타 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공공재 게임 실험을 실시했다. 놀랍게도 경제학 전공자의 평균 기부율은 초기 금액의 20%밖에 되지 않았다. 기타 전공자는 49%였기 때문에 상당히 큰 차이를 보였다.
프랭크와 그의 동료들은 마웰 등의 연구에 박차를 가해 다양한 관점에서 ‘경제학을 배우면 이기적이 되는지’에 대해 검토했다. 우선 그들은 자선사업 등에 돈을 기부했는지 여부를 설문 조사했다. 조사 대상은 각 분야의 대학교수 124명이다. 그 결과, 1년간 전혀 기부를 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경제학자가 9.3%로 최고였고, 전문직 과정(음악·교육·비즈니스)이 1.1%로 최저였다. 그 밖의 교수는 2.9~4.2%로, 경제학자의 냉담함이 두드러진 결과였다. 그러나 자원 봉사 활동이나 대통령 선거 투표에 있어서는 거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어서 프랭크는 경제학 전공 학생과 기타 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죄수의 딜레마 실험을 1회 실시했다. 그 결과, ‘배신’을 선택한 비율은 경제학 전공 학생이 60.4%, 기타 전공 학생이 38.8%였다. 기타 전공 학생도 수업에서 죄수의 딜레마에 대해 배운 사람들로만 이루어졌고, 실험 과정에서도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이해가 부족했거나 잘못 알고 선택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경제학을 배운 사람이 우울해지는 예는 계속된다. 다음과 같이 가상으로 질문했다. ① “어느 작은 회사의 경영자가 컴퓨터를 10대 주문했는데 대금 청구서에는 9대 값만 청구되었다.” ①-1: 이 경영자는 컴퓨터 판매회사의 잘못을 지적하고 10대 값을 지불하려 할까? ①-2: 자신이 경영자였다면 어떻게 할까? ② “100달러가 들어 있는 봉투를 떨어뜨렸다. 봉투에는 주소와 이름이 적혀 있다.” ②-1: 자신이 떨어뜨렸다면 누군가가 주워서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②-2: 반대로 자신이 그 봉투를 줍는다면 주인에게 가져다줄 것인가?
답변자는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첫째 그룹은 미시경제학 A를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로, 담당 교수는 주류 경제학, 특히 게임이론과 산업조직론을 전공했으며 학생들에게 죄수의 딜레마에서 배신이 유리하다거나 협력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은 미시경제학 B를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로, 담당 교수는 중국 경제 발전을 전공하였고 죄수의 딜레마는 강조하지 않는다. 마지막 그룹은 천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도덕적이지 못한 답변을 한 사람의 비율을 다음 페이지에 표로 정리했다(단위: %).
| ①-1 | ①-2 | ②-1 | ②-2 | |
|---|---|---|---|---|
| 미시경제학 A | 45.8 | 42.7 | 43.8 | 29.2 |
| 미시경제학 B | 33.9 | 34.8 | 38.3 | 25.2 |
| 천문학 | 33.3 | 23.3 | 40.0 | 10.0 |
경제학을 배우면 이기적이 되는 것일까? 또는 반대로 이기적인 사람이 경제학을 전공하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프랭크 등은 학생의 차이에 따라 죄수의 딜레마에서 배신을 선택한 사람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조사했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비경제학 전공자 가운데 배신을 선택한 비율은 1·2학년이 53.7%, 3·4학년이 40.2%였다. 연령이 높아지면 배신을 선택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기 때문에 이것은 그 사실과 일치한다. 한편 경제학 전공자 가운데 배신을 선택한 비율은 1·2학년이 73.7%, 3·4학년이 70.0%였고, 연령이 높아져도 배신을 선택하는 사람의 비율은 조금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경제학을 배우면 이기적이 된다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경제학자에게 다행스런 소식도 있다. 프랭크 등이 조사해 내린 결론이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프레이(B. S. Frey)와 마이어(S. Meier)는 이 결론에 부정적인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댓글남기기